한국일보

바야흐로 ‘귀금속 시대’… 금·은·구리까지 사상 최고

2025-12-25 (목) 12:00:00 조환동 기자
크게 작게

▶ 플래티넘까지 동반 급등
▶ 내년 금값 5,000달러 돌파

▶ 지정학 긴장·공급망 불안
▶ ‘안전 자산’에 자금 몰려

바야흐로 ‘귀금속 시대’… 금·은·구리까지 사상 최고

금과 은, 백금과 구리 등 귀금속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정학적 사태와 경제 불확실성 속에 글로벌 자금이 이들 안전자산에 몰리고 있다. [로이터]

바야흐로 ‘귀금속의 시대’가 도래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금, 은, 백금, 구리 등 주요 금속 가격이 일제히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전례 없는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강경책으로 인한 지정학적 긴장감,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와 달러 약세, 전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이 맞물리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등에 자금이 대거 쏠린 결과다.

23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는 전장보다 0.8% 오른 온스당 4,505.7달러로 사상 처음 4,500달러선을 돌파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금 현물 가격은 이날 온스 당 4,525.77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금값은 올해 들어서만 70% 넘게 폭등해 1979년 이후 최대 연간 상승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은과 백금(팰래티넘)의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은 현물 가격은 이날 장중 72.70달러를 찍으며 역대 최고치를 썼고, 연초 대비 상승률은 150%에 달했다.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 촉매제 등에 쓰이는 백금 역시 1987년 데이터 집계 이래 처음으로 온스 당 2,300달러 선을 뚫고 2,377.50달러까지 치솟았다. 백금은 올해 160% 넘게 오르며 금속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귀금속 시장 전반이 ‘불장’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상승세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미국이 베네수엘라 유조선을 봉쇄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위험 헤지 수단으로서의 금의 매력을 부각시켰다.

거시경제적 요인도 기름을 부었다.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이미 세 차례 금리를 내린 데 이어 내년에도 추가 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금을 중심으로 한 귀금속의 매력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산업용 금속인 구리 역시 공급 위기가 겹치며 사상 처음으로 톤(t)당 1만2,000달러 벽을 깼다.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 3개월 선물 가격은 전날 장중 1만2,159.50달러까지 치솟았다. 구리는 올해 35% 넘게 오르며 2009년 이후 최대 연간 상승 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 귀금속은 모두 공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중장기적으로 오를 수 밖에 없다.

구리 가격 급등은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전력망 개선에 따른 전선 수요 폭증에 더해, 주요 생산국의 광산 사고로 생산 차질이 빚어진 탓이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들이 재고 확보에 나서며 가격을 더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귀금속 강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가디언 볼트의 귀금속 딜러인 존 피니는 “현재의 상승세는 단순한 투기적 거품이 아니라 실물 수요와 거시경제적 위험에 대한 민감도가 결합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금값 목표치를 온스당 4,900달러로 제시하며 추가 상승 가능성을 열어뒀다.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 금값 5,000달러 돌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달러 인덱스가 소폭 하락한 점도 귀금속 랠리에 힘을 보탰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 투자자들에게 달러로 표시되는 귀금속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일 수 있다.

이밖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계획을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자, 자동차 촉매 변환기에 쓰이는 이들 금속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백금족 금속(PGM)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은 격”이라며 수요 수명이 대폭 연장되었다고 평가했다.

<조환동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