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 고람(古藍) 전기(田琦, 1825-1854) (매화와 초가집) 국립중앙박물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한데 청매화가 만발했네
사랑하는 내 벗이 창문을 활짝 열고
나 들으라 퉁소부니 그 정이 고맙구나
꽁꽁 언 개울 위에 매화 꽃 비추이고
거문고 메고 가니 매화향에 흥겹도다
오랫만에 벗과 함께 소리 한 번 맞춰보세
고람(古藍) 전기(田琦)는 한양에서 이초당(二草堂)이라는 약재상을 하는 중인(中人)이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제자였다. 그림에 대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던 그는 서화를 수장하고 거래하기도 했는데 그 자신 또한 글씨와 그림에 능했다. 고람이란 호는 추사가 그의 재능을 보고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글자를 따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한다는 뜻의 사의(寫意)적인 문인화를 잘 그린 천재 화가로 담백함과 정신성을 중시하였으며 당대의 문인과 서화가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훤칠한 외모에 재주가 뛰어났으나 몸이 허약해 아쉽게 2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제자인 그의 죽음에 추사가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퍼했다고 하는데, 이는 공자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 안회(顔回)가 일찍 죽자 소리내어 통곡을 했다는 고사를 생각나게 한다.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워내는 매화는 고결한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초옥은 세속을 떠나 자연과 함께 사는 선비가 머무는 곳이다. <매화초옥도>는 눈 덮인 산과 매화나무 꽃으로 싸인 작은 초가에 사는 선비를 친구가 거문고를 들고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선비의 은일(隱逸)한 생활과 우정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 속의 글에는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역매(亦梅)’라고 쓰여 있어 초옥의 주인이 그의 벗으로 매화를 사랑한 역매 오경석(吳慶錫)임을 밝혀 준다. 초록색 옷을 입고 초옥 안에 앉아 피리를 불며 자신을 기다리는 역매를 홍의(紅衣)를 입은 고람이 찾아가고 있다. 이 그림에서 고람은 눈덮인 지붕을 엷은 주홍색으로, 거문고를 메고 가는 선비의 옷을 붉은색으로, 매화 나무 가지와 눈 덮인 산에 초록색의 태점(笞點-짧고 힘 있게, 회초리로 치듯이 찍은 점)을 그려 넣어 그림에 생동감을 주었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마치 현대 서양화의 채색을 보는 듯하다. 특히 눈 덮인 먼 산과 가까운 산을 원경과 근경으로 취하고 그 사이에 매화나무와 집이 있는 화폭이 가득찬 구조여서 보는 사람이 그림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람이 그린 다른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에 들어있는 다음의 화제시(畵題詩)가 위의 그림과도 잘 어울린다.
雪意園林梅己花(설의원림매기화) 눈 내린 숲에 매화가 피었는데
西風吹起鴈行斜(서풍취기안행사) 서풍이 불며 기러기가 날아가네
溪山寂寂無人跡(계산적적무인적) 산은 적적하여 사람의 자취 없고
好問林逋處士家(호문임포처사가) 즐거운 마음으로 임포처사의 집을 묻네
송나라 사람 임포(林逋)는 매화사랑으로 유명한데, 그는 깊은 산속의 초옥에 은거하며 매화를 자식으로 삼고 학을 아내로 삼아 평생을 살았다 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의 퇴계 이황(李滉)도 매화사랑이라면 첫째가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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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