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전 새 종전안 논의
▶ 우크라 통제 영토까지 양도
▶ 핵심무기 포기 등 더 불리
▶ 러군 진격·부패스캔들 작용
▶ “그대로 수용땐 주권 포기”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에서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을 소방대원들이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와 병력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긴 새로운 종전안이 논의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돈바스 지역 양도’가 골자였던 지난 8월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 당시보다 러시아에 더 유리해졌다. 이번에도 우크라이나는 논의에서 배제됐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새 종전안 초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자국군 통제하에 있는 영토까지 포함한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 모두 넘기고 병력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지난 8월 미러 회담에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돈바스를 넘기면 ‘러시아는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 우세 지역에서 공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특사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경제특사가 주도하는 새 종전안에는 이 밖에도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더 담겼다. 우크라이나는 핵심 무기류를 포기해야 하고 외국 군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주둔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수도 키이우에는 러시아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서방의 장거리 무기를 더 이상 제공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내정간섭에 가까운 내용들도 포함됐다. FT는 “초안에는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의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러시아 정교회의 우크라이나 지부에 공식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도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오랜 정치적 목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로이터통신도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영토와 일부 무기 포기’가 담긴 새 종전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도 전날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평화 ▲안전보장 ▲유럽 안보 ▲미·러·우크라이나 관계 등 4개 범주로 나뉜 28개 종전 조항 계획을 비밀리에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 입장이 진정으로 반영돼 (결과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드미트리예프 발언도 담았다.
실제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이번 종전안에 대해 한 소식통은 FT에 “우크라이나가 이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전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최근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와 만나 이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NBC 방송은 이날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28개 조항이 담긴 종전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우크라이나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방안”이라고 일제히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 역시 “러시아에 심하게 기울어진 제안”이라고 반발했다.
새 종전안이 러시아에 전적으로 유리하게 논의된 건 3개월간 달라진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돈바스를 통째로 내놓으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조건으로 “현재 전선을 동결한다”를 내세우며 우크라이나 편에 섰었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러시아는 최대 격전지인 포크롭스크 장악을 목전에 두는 등 돈바스 점령을 위해 진격 중이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시절 동업자인 측근 티무르 민디치가 ‘1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비리’에 연루되면서 사면초가에 놓였다.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지지율이 20% 아래로 폭락했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수사당국의 칼날이 궁극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