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 우크라 난방시설 맹폭… 수백만명 ‘최악의 겨울’ 직면

2025-11-1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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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은 대처법 익혔지만 가스 끊기면 생존 위협

▶ 젤렌스키, 미국에 ‘SOS’

러, 우크라 난방시설 맹폭… 수백만명 ‘최악의 겨울’ 직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

“전기가 없이는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해도 가스가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워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부 외곽에 거주하는 올렉산드라 코발렌코(37)는 전쟁 발발 이후 4번째 맞는 이번 겨울이 유난히 두렵다. 지난 세 번의 겨울 동안 그와 남편, 두 자녀를 괴롭혔던 것은 러시아의 전력망 공격으로 인한 잦은 정전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코발렌코 가족은 이제는 정전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혔다. 전기가 끊기면 보조 배터리를 이용했고, 자녀들은 헤드램프를 켜고 숙제했다. 정전이 길어지면 인근의 샤핑몰로 가서 전자기기를 충전했다. 정전은 불편했지만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스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코발렌코 씨는 가족을 한겨울 혹한으로부터 지켜주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가스가 끊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다고 했다. 그는 “정말로 무섭다”며 자녀들이 영하의 추위 속에서 고통받거나 병들까 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 우크라이나가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러시아가 올해 들어 공격 대상을 가스 인프라로 바꿨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그간 가스 인프라 공격을 자제했던 것은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가스관을 이용해서다. 이 경로를 파괴하면 러시아 자신도 수익을 잃게 돼 공격을 자제했지만 5년짜리 가스 운송 계약이 올해 1월1일을 기점으로 종료되면서 러시아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보호할 경제적 이유가 사라졌다.

러시아가 올해 초에 이어 지난달부터 가스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면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의 한 당국자에 따르면, 지난달 우크라이나의 석유·가스 국영기업 나프토가즈의 천연가스 기반 시설이 7차례 공격을 받아 가스 생산의 60%가 중단됐다.

나프토가즈의 세르히이 코레츠키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 가정의 80%가 가스로 난방과 취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가스 기반의 중앙난방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스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수백만 명이 추위로 고통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난방 대용으로 전기 히터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에 부담만 가중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의 공격 때 몇 시간 동안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스 공급과 자금 확보를 위해 유럽 지도자들과 연쇄 통화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가스를 확보한다고 해도 러시아가 가스관과 기반 시설을 공격하면 저장된 가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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