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 팔리면 안 팔아요”… 집값 올리는 ‘디리스팅’

2025-11-10 (월) 12:00:00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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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인하 대신 매물 철회
▶ 대도시 중심 리스팅 확산

▶ 낮은 이자율 포기 못해서
▶ 경제 불안 심리도 반영돼

“안 팔리면 안 팔아요”… 집값 올리는 ‘디리스팅’

집을 내놓은 뒤 판매를 철회하는 이른바 ‘디리스팅’이 매물 부족과 집값 상승 원인으로 지적됐다. [로이터]

집값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유로 셀러들이 매물 가격을 내리지 않고 시장에서 아예 거둬들이는 현상으로 지적됐다. 집을 내놓은 뒤 일시적으로 판매를 철회하는 이른바‘디리스팅’(Delisting) 현상으로 인해 전체 주택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매물 부족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성수기에도 매물 철회 급증

온라인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올해 9월 전국적으로 매물 ‘철회’(Delistings)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52% 급증했다. 지난해 9월의 증가율(약 46%)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8월의 경우 매물 철회 증가율이 무려 약 72%에 달해 정점을 찍은 뒤 이후 다소 둔화세로 돌아섰다.


통상 여름철은 주택 거래가 가장 활발한 시기로 매물 철회 현상은 시장이 한산해지는 겨울철에 대부분 이뤄진다. 그러나 올해 9월에는 이 같은 과거 흐름과 달리, 매물 철회 속도가 신규 매물 증가 속도보다 세 배나 빠르게 발생한 것이다. 지난 8월 시장에 나온 신규 매물 100건 중에서도 약 28건이 철회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달(16건)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 낮은 이자율 포기 못 해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매물 철회 급증 이유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낮은 이자율로 모기지 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자들이 기존의 낮은 이자율의 모기지를 포기하기 꺼리는 점을 첫번째로 꼽는다. 일부 셀러들은 여전히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기대하거나, 부동산 경기 흐름을 좀 더 지켜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역시, 매물 철회 증가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리얼터닷컴의 제이크 크리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매물 철회는 결국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부동산 시장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주택 시장에서 매물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지난 9월에도 24개월 연속으로 매물 증가세가 이어졌다. 다만 증가 폭은 지난 5월 이후 매달 둔화되고 있으며,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집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전국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8월 주택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5% 상승했다. 이는 7월(1.6%)보다 소폭 낮은 수치지만, 여전히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안 팔리면 안 팔아요”… 집값 올리는 ‘디리스팅’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고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셀러들 사이에서 매물 철회가 두드러진다. [로이터]


■ 전체 소유자 70% 이자율 5% 미만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매물 철회 현상이 이른바 이자율 ‘잠금’(Lock-In) 효과가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전체 주택 소유자의 약 70%가 금리 5% 이하의 모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2~4%대의 매우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자들이다. 반면 국영모기보증기관 프레디맥이 최근 발표한 30년 고정 모기지 대출 평균 이자율은 6.17%로, 기존 대출자가 집을 팔고 새 집을 사려면 이자율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 경제 불안 심리도 반영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낮은 이자율에 묶인 주택 소유자들도 언젠가는 집을 처분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자녀 출산이나 직장 이동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이사를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려거나, 몇 년 전과 같은 높은 수준의 매매가를 고집하는 경우 주택 시장이 여전히 관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KPMG의 옐레나 말레예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몇 년간 치열한 구입 경쟁과 현금 거래로 집을 시세보다 10만 달러 이상 더 받고 팔았던 기억이 많은 셀러들에게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매물 철회 및 시장 관망 현상은 경제 전반에 대한 불안 심리도 반영한다. 인플레이션, 고용, 성장 등 여러 지표가 불확실한 가운데, 2026년 경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는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이 많다.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까지 기준 금리를 단계적으로 인하할 계획을 밝히면서, 향후 모기지 이자율 하락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연준이 직접 모기지 이자율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기준금리 인하는 일반적으로 모기지 대출 이자율 하락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 대도시에서 매물 철회 급증

특히 주요 대도시에서의 매물 철회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마이애미의 경우 최근 몇 달간 신규 매물 100건당 약 55건이 철회됐고, 휴스턴과 탬파의 매물 철회 건수는 각각 40건과 33건에 달했다. 내슈빌의 경우 여름철 거래가 다소 주춤하면서 가격 인하 대신 매물을 거둬들이는 사례가 늘었다.

내슈빌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매물 철회가 시장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라며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낮은 이자율 유지를 위해 집을 임대로 전환하면서 임대 매물이 늘고 있다”라며 “내슈빌에서 세입자 우위 시장 현상이 나타난 것은 매물 드문 일이다”라고 지역 상황을 전했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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