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눈치 봤나…EU·중남미 회의에 정상 대거 불참

2025-11-08 (토) 02: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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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마약 전쟁’ 중 카리브해 안보 등 의제에 부담 느낀 듯

트럼프 눈치 봤나…EU·중남미 회의에 정상 대거 불참

구스타보 베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로이터]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CELAC) 33개 회원국 간 협의체인 EU-CELAC 정상회의에 주요국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외교부 홈페이지와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엑스(X·옛 트위터) 게시물 등을 보면 9∼10일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열리는 4차 EU-CELAC 정상회의에 정상급 초청자 60여명 중 12명이 참석을 확정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정부는 장·차관급 대리 참석을 콜롬비아 측에 통보했다고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경우 '정상들의 참석률 저조'로 행사 개최가 임박해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AFP통신이 EU 측 관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2023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3차 회의 당시 불참자 명단보다 참석자 명단이 더 길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 개최를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루이스 몬테네그루 포르투갈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이 눈에 띄는 참석 인사다.

콜롬비아 당국은 '정상들의 외면 요인'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찾으려는 분위기다.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최근 엑스에 "미주 지역 평화를 반대하는 외국 세력이 이번 정상회의 실패를 원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엘티엠포와 엘에스펙타도르 등 콜롬비아 언론은 이를 놓고 다분히 백악관을 겨냥한 비판이라고 짚었다.

미국과 콜롬비아 간 첨예한 갈등 속에 주요국 정상들이 '트럼프 심기'를 고려한 정세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페트로 대통령은 미군이 카리브해 지역에서 '마약 운반선'이라고 주장하는 선박을 잇달아 공격한 것에 대해 "사법 절차 없는 처형"이라고 힐난하는 한편 미국 내 라틴계 이민자 강제 추방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충돌해 왔다.

이런 가운데 이번 EU-CELAC 정상회의 의제 중 하나로 '카리브해 지역 안보'가 거론되면서, 역내 민감한 쟁점에 대해 공개 발언을 해야 하는 압박에 더해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에 반기를 드는 듯한 뉘앙스를 비출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카리브해 해안가 도시인 산타마르타는 미군이 '마약 운반선과의 전쟁'을 펼치기 위해 선택한 지역에서 불과 100㎞ 안팎 떨어진 곳에 있다. 트럼프 정부는 공격 대상이 된 선박들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해안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옮기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다만, 페트로 대통령은 엑스에 "이미 5만4천여명이 산타마르타 호텔에 묵고 있다"며 회의 참석 등록자 규모를 강조한 뒤 "세계의 심장인 이곳에서 우리는 유럽과 함께 민주주의 등대를 세울 것"이라고 적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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