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역사 산책
2025-10-28 (화) 12:00:00
박영실 시인·수필가
소아시아로 불리는 튀르키예를 몇 차례 방문했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오묘한 나라다. 튀르키예에서 마음이 머무는 곳이 많이 있었지만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이 기억에 남는다. 군사박물관은 튀르키예군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군사박물관을 마주했을 때, 마치 눈앞에서 전쟁을 목도 하는 듯했다. 포탄이 날아와 필자의 눈앞에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했다. 바로 옆에서 대포 소리와 총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전시관 초입에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용한 거대한 대포가 놓여 있었다. 튀르키예의 초대 대통령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다. 그의 업적 중에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갈리폴리 전투의 승리다. 케말은 튀르키예 최고의 영웅이며 튀르키예를 건국한 인물이다. 튀르키예 곳곳에서 그의 초상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군사박물관에 그리스관과 한국관 전시관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 세계에 한국전 참전 요청을 했을 때, 튀르키예가 가장 먼저 응답했다.
군사박물관을 마주하며 오버랩되는 사건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백여 년 전에 튀르키예군에 의해 아르메니안 백오십만 명의 대학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이십 세기 최초의 조직적인 인종학살로 기록되고 있다. 학살 이전,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안은 231만 명이었으나, 학살 이후 1922년에는 48만여 명에 불과하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것은 미국 미네소타대학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 연구센터> 에서 보고한 자료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 아르메니아 인구의 30% 이상이 대학살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다.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현재 튀르키예에 의한 아르메니안 학살을 공식 인정한 국가는 프랑스와 러시아를 비롯해 스물두 개 국가다. 다른 국가들은 튀르키예와의 외교 문제로 아르메니안 제노사이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명단에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이스라엘이 제외되었다. 한국도 빠져있다. 얼마 전까지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이 제외되었다. 하지만 결국, 오스만 제국이 1915년부터 1923년 사이에 아르메니안 150만 명을 학살한 역사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미국 하원이 통과시켰다. 미국이 추가되어 스물세 개 국가인 셈이다.
민족의 역사는 곧 민족의 정체성이며 국민 개인의 정체성이다. 민족과 개인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본토를 떠나 세계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린다 해도 그 민족성을 품고 살아간다. 전쟁의 종말은 참혹한 죽음과 무고한 자들, 노인과 여자들, 어린아이들의 희생을 동반한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 전시된 전리품들에 수많은 자의 피와 아픔의 상흔이 담겨 있었다. 역사는 누가 어떤 각도에서 어떤 관점으로 기록하느냐에 따라 재해석되고 다른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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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