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텔·여행’ 업계 양극화… 고급 호텔 ‘나홀로’ 호황

2025-10-27 (월) 12:00:00
크게 작게

▶ 부유층, 고급 여행 예약 쇄도
▶ 초고가 호텔 방 없어 못 팔아

▶ 호텔업계 전반, 코로나 후 최악
▶ 중저소득층, 여행은 ‘사치’

‘호텔·여행’ 업계 양극화… 고급 호텔 ‘나홀로’ 호황

대다수 미국인들이 여행을 줄이고 있는 가운데, 부유층의 초고가 호텔 소비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로이터]

대다수 미국인들이 여행을 줄이고 있는 가운데, 부유층의 초고가 호텔 소비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일부 고급 호텔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가격이 수천 달러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폭주하고 있다. 반면 중저소득층은 불안한 경제 전망으로 인해 결혼식 예약을 취소하거나 여행을 줄이는 등 소비를 크게 줄이고 있어, 호텔 및 여행업계는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고급 여행 즐기는 부유층

고급 여행사 ‘럭셔리 트래블 에이전시’(Luxury Travel Agency)의 앤드루 샛코위악 부대표는 올해 여행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회사 고객들은 여전히 마이애미, 뉴욕, 유럽, 카리브해 등지로 여행을 떠나고 있으며, 문의 건수는 지난해보다 약 15% 이상 증가했다.


샛코위악 부대표에 따르면, 이들 고객의 호텔 숙박비는 현재 1박에 1,500~2,500달러 수준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900달러에서 크게 인상됐다. 샛코위악 부대표는 “숙박비가 ‘1박에 3,500달러라고 알려줘도 불평없이 예약하는 고객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 고급 호텔 업계 ‘나홀로’ 호황

호텔 산업 전반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고급 호텔만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부유층이 주식시장 상승과 주택 가치 상승의 혜택 덕분으로, 이들 부유층 사이에서는 수만 달러짜리 호화 호텔의 숙박비도 거리낌 없이 감수하는 분위기다.

부동산 데이터 업체 코스타에 따르면, 포시즌스, 리츠칼튼, 세인트레지스 등 대표적 고급 호텔 브랜드는 올해 매출이 약 2.9% 증가했다. 반면 저가 호텔은 3.1% 감소하며 뚜렷한 매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코스타의 얀 프라이탁 호텔업계 애널리스트는 “고급 호텔은 수요가 늘고 있는 반면 저가 호텔은 침체 중”이라며 “현재 호텔 산업은 매우 불균형한 상태로, 버티는 호텔은 고급 호텔 일부뿐 대다수 호텔이 고전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 호텔업계 전반, 코로나 이후 최악

코스타의 분석에 따르면, 호텔 매출은 최근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2008년 금융위기, 9·11 테러 직후에만 나타났던 부진 현상이다. 호텔 업계는 이 같은 수요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객실 요금 인상폭을 8개월 연속 인플레이션을 밑도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평균 호텔 숙박비는 1박에 159달러 수준으로 지난해와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이 가격은 고급 호텔의 가격 인상이 반영된 수치로, 중저가 호텔 숙박비는 실제로 하락세다. 프라이탁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여행객을 포함한 단체 예약이 둔화하고 있으며, 중하위 소득층은 여행을 사치처럼 여기고 있다”라고 호텔 및 여행 업계 현황을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과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캐나다와 중국 등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호텔 산업은 현재 이중고를 겪고 있다. ‘관광경제연구소’(Tourism Economics)는 올해 미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이 8% 이상 감소하며 83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해외 관광객 중 캐나다 관광객의 감소폭이 약 25%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 초고가 호텔 방 없어 못 팔아

호텔 및 여행업계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1~2분기 약 1.6% 성장, 3분기엔 더 높은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물가 상승, 고용 둔화, 크레딧카드 부채 증가 등으로 인해 상위 10%를 제외한 계층의 소비는 위축되는 추세다.

경제 연구기관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현재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인 상위 10% 미국인이 전체 소비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이 비율이 35%였던 점을 감안하면 부유층의 소비 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샌디에고 인근의 럭셔리 리조트 ‘란초 발렌시아’(Rancho Valencia)는 올해 객실 예약이 꾸준히 증가했다. 이 리조트의 경우 기본 객실도 1박에 1,000달러를 넘고 있으며, 별채 형태의 최고급 객실은 무려 2만2,000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초고가 숙박비에 불구하고 내국인 중심의 단골 부유층 고객의 예약이 밀리고 있다. 밀란 드라거 총지배인은 “올해는 우리 리조트에게 최고의 해”라며 “다른 호텔 업계는 경기가 안 좋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예외”라고 했다.

■ 메리어트·힐튼, ‘초호화 호텔’에 사활

이 같은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주요 글로벌 호텔 체인들도 고급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메리엇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은 기존 670개 럭셔리 호텔에 추가로 300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힐튼도 자사 최고급 브랜드인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의 호텔 수를 36개에서 66개로 두 배 가까이 늘릴 계획이다.

■ 결혼식까지 취소

워싱턴 D.C. 중심가에 위치한 ‘바이서로이’(Viceroy) 호텔과 ‘호텔 제나’(Hotel Zena)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지역 호텔들은 정부 관계자, 국제 회의 참석자, 외국 관광객 등이 예약을 줄이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하락을 겪고 있다. 결혼식 등 사적 행사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이들 호텔을 총괄하는 옥사나 귤나자리안 지배인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며 “고객들이 경제 전망을 불안해하며 모든 계획을 중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보스턴 북부에 거주하는 제러미 부탱(37) 씨는 지난해 12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장을 잃은 뒤, 여행은 물론 외식과 문화생활까지 모두 줄였다. 현재는 최저임금의 택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아내도 도서관 사서로 일한다. 그는 “우리는 모든 수입을 고지서 납부에 지출하고 있다”라며 “아내에게 프러포즈한 이탈리아에 다시 가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이 없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