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투자 규모·’상업적 합리성’ 등 쟁점 두고 여전히 견해차 관측
▶ 한, ‘무제한 스와프’ 주장은 사실상 양보한 듯…귀국 김용범 “대부분 쟁점 실질 진전”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워싱턴DC를 찾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여한구 통성교섭본부장이 19일(한국시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발언하고 있다. 2025.10.19 [연합뉴스]
오는 29일(한국시간)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미 양국이 최근 집중적인 각료급 협상을 통해 3천500억달러(약 500조원)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놓고 접점 찾기를 시도했다.
정부는 우리 측의 집중적 우려 제기로 미국이 이제는 한국의 단기 투자 부담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을 어느 정도는 갖게 됐다면서 이번 교섭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미국은 앞서 일본과 합의대로 '투자 백지수표' 요구를 여전히 하고 있고, 반면 한국은 직접 투자 규모를 줄이고 투자 기간도 분산하는 '할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합의문 서명까지는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9일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이번 방미 협의에서는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며 "여전히 조율이 필요한 남은 쟁점이 한두 가지 있다" 밝혔다.
김 실장은 구윤철 경제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한국의 각료급 고위 당국자 4명이 총출동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방미 협의를 통해 한국의 '감내 능력' 문제에 관해선 미국과 상당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 실장은 "대한민국이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리고 상호 호혜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근접해가고 있다"며 "이번 방미 전보다는 APEC 계기에 타결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김 실장은 남은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정부 안팎에서는 직접 투자 규모, '상업적 합리성' 차원의 투자처 선정 방식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한미 간 견해차가 여전히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7월 30일 관세 협상 타결 당시 직접 현금을 내놓는 지분 투자(equity)는 5% 정도로 하고 대부분을 직접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credit guarantees)으로 하되 나머지 일부를 대출(loans)로 채우려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과 합의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투자처를 선정하면 한국이 45일 안에 투자금을 특수목적법인(SPV)에 입금하는 등 투자를 뒷받침하는 '투자 백지수표'를 요구해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의 투자처 선정 관여권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관세 협상 결렬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협상을 해왔다.
이 가운데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요구는 현실적으로 한국의 단기적인 '투자 부담 능력 제한'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협상 전략 차원의 카드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중앙은행 간 상설 통화 스와프 체결은 연방정부가 아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권한에 속한다.
구 부총리는 지난 16일(미국시간) 워싱턴DC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특파원단과 만나 "(투자) 스킴이 확정되면 그에 따라 외환 소요가 나올 것"이라며 "이 부분 변동에 따라 통화스와프가 완전히 불가능하다,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한다면 얼마만큼 해야 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냐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협상 타결의 전제 조건인 '필요조건'으로 강조했던 것을 상기해본다면, 한국 정부의 대미 협상 우선 목표가 이제는 통화 스와프 체결 그 자체보다는 재정·외환 부담으로 이어질 대미 직접 투자 규모를 현실적 선에서 통제하는 데 맞춰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설령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체결된다고 해도 직접 투자 비중이 높아지고, 이를 단기간에 미국에 제공해야 한다면 한국 정부가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3천500억달러는 한국 작년 국내총생산(GDP)의 20%의 규모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2026년도 예산안(728조원)의 약 70%에 달한다.
이처럼 한미 양국이 핵심 쟁점에서 견해차가 큰 상황이지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여전히 양국의 관세협상 최종 타결에 중요한 기회의 창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현재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 지속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미국 역시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조선 등 자국 산업 부흥과 공급망 강화에 한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상호 승리로 포장할 수 있는 유연한 해석이 가능한 문구를 중심으로 절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배경이다.
통상 당국자는 "대미 협의 시작쯤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으로 낙관적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극적 타결도, 그렇다고 결렬도 아닌 상황 속에서 한미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