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주의 종말 두렵다” 전역 2천여곳서 ‘왕은 없다’ 시위

2025-10-18 (토) 01: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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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뉴욕·시카고등서 수천·수만명씩 운집해 反트럼프 집회

“민주주의 종말 두렵다” 전역 2천여곳서 ‘왕은 없다’ 시위

(워싱턴=연합뉴스)=18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반(反)트럼프 집회인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팻말을 든 참가자들이 집결하고 있다. 배경에 연방의회 의사당이 보인다. 2025.10.18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의 국정 운영에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18일 미국 곳곳에서 대규모로 열렸다.

연합뉴스 현지 취재와 언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11시께부터 워싱턴DC와 뉴욕, 보스턴, 애틀랜타 등 동부 주요 도시의 중심 거리에 각각 시위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어 시차가 있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텍사스주 휴스턴 등 중서부 지역에서도 같은 기치를 내건 시위가 잇따랐다.


앞서 행사 주최 측은 이번 시위가 미 전체 50개 주에서 2천500여건의 집회를 중심으로 열리며 수백만 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날 수도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오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시위대가 점점 불어나 그 인원이 수천명에 이르렀고, 백악관에서 의사당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거의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미국 내 치안 유지 목적의 군대 동원, 법원 판결 무시, 이민자 대거 추방, 대외 원조 삭감, 선거 공정성 훼손 등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정책이나 언행이 민주주의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그가 독재자나 파시스트처럼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저지주에서 왔다는 워싱턴 시위 참가자 에드 클리멕(62) 씨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끝날까 봐 두렵다"면서 "트럼프는 사법부와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자기 권력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의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그러면 민주주의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시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우리 목소리를 내기 위해 왔다"면서 "우리나라는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낸 덕분에 세워졌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들을 것이고 그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시위 현장에서 만난 다른 시위자 페피 그레코(69·여) 씨도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내가 너무 무력하다고 느껴서 나왔다"며 "시위는 개인이자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이게 도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코 씨는 이어 "오늘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들(트럼프 행정부)은 더 이상 그냥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들은 이걸 '미국 혐오' 시위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평화적인 시위에 나섰으며 그건 미국 시민의 권리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위 이름인 '노 킹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왕적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는 "1776년 이후 왕이란 없다", "우리의 마지막 왕은 조지였다"라고 적은 팻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초기 영국 왕정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인들은 조지 3세 영국 국왕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해 독립을 쟁취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뉴욕에서도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일대에 수만 명이 모여 7번 애비뉴를 따라 남쪽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뉴욕은 대규모 집회가 예고된 곳 중 하나였다.

뉴욕 맨해튼의 경우 지난해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80% 넘는 득표율을 올릴 정도로 민주당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비꼬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주요 집결지인 맨해튼 타임스퀘어와 인근 거리는 행진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 이전부터 곳곳에서 모여드는 시위대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뉴욕경찰은 타임스스퀘어부터 7번 애비뉴를 따라 14번가까지 도로 통행을 통제했다.

이름을 리사(73)라고 밝힌 한 집회 참가자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나는 미국을 사랑하지만 이제 내 나라를 알아보지 못하겠다"며 "나는 내 손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선택권이 있는 나라에서 자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왔다는 해너 막스 씨도 "트럼프 행정부는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는 동의하지만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 가치들을 강요하고 있다"며 "선거구 재조정, 이민정책, 대학에 대한 공격, 이민세관단속국(ICE) 단속 행태 등 수많은 일들이 나를 화나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카고 집회에는 이 지역 출신인 할리우드 배우 존 쿠삭도 참여해 발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곳을 파시즘의 거점으로 만들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당신은 우리 거리에 군대를 투입할 수 없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란 진압법을 발동할 만큼 혼란을 일으킬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시카고는 근래 트럼프 행정부가 대대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을 벌인 뒤 그에 반발한 시위가 거세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 투입을 지시하는 바람에 민주당 소속인 주지사와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인 곳이다.

시위 주최 단체 중 하나인 인디비저블(Indivisible)의 공동 창립자 리아 그린버그는 이날 언론에 "왕은 없다(No Kings)는 구호야말로 미국적인 정신"이라며 "우리는 왕을 두지 않았고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버그는 300개 이상의 지역 풀뿌리 단체들이 이번 집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일부 시위대는 현장에서 비폭력·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란색 옷과 두건 등을 착용했으며, 트럼프 행정부를 풍자하는 각종 인형과 함께 특이한 복장이나 분장을 하고 나와 시위를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이었다.

워싱턴DC의 집회 주최자 리즈 카타네오는 CNN 인터뷰에서 "우리 운동은 항상 비폭력과 평화적 시위에 대한 약속을 지켜왔다"며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안전 브리핑과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의 '노 킹스' 시위에 앞서 유럽 런던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베를린, 파리, 로마 등에서도 주요 명소나 미국대사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연대 시위를 벌였다.

미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은 이번 시위에 직접 참석하거나 온라인 메시지 등을 통해 힘을 보탰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의 '노 킹스' 시위는 미국의 본질에 대한 확증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다"라고 썼다.

반면 공화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전날 회견에서 이번 시위를 '미국 증오' 집회라고 지칭하면서 "거기엔 하마스 지지자들과 안티파(반파시즘 단체) 부류의 사람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셧다운(예산안 의회 통과 불발에 따른 연방정부 일부 업무 정지) 종료 협상을 이번 시위 탓에 더 지연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사람들은 그것, '킹' (시위) 때문에 (정부 운영 재개를) 미루고 싶다고 말한다"며 "그들은 나를 왕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노 킹스' 시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6월 14일 처음으로 열린 미 전역 2천여곳의 시위에는 500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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