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셔에서] Collateral beauty

2025-10-16 (목) 12:00:00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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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은 우리 모두에게 아픈 달이었다. 친구의 아들이 죽었다는 비보(悲報)는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이제 막 사십을 넘긴 그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몰라 우리는 모두 망연자실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그 비통함에 우리는 그저 숨죽이고 그녀의 곁을 지켰다.

한 생명이 살다 떠나니, 그것도 미리 준비된 죽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았다. 장례식 준비는 물론이고 그가 남긴 재산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들 잃은 슬픔만으로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붙들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야 했다. 구월 한 달을 분주하게 보내고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소파에 뉘고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윌 스미스와 에드워드 노턴이 나오는 영화 collateral beauty다. 뉴욕의 광고 회사 대표인 하워드는 사랑하는 딸을 잃은 후 깊은 슬픔에 빠져 세상과 단절하며 지낸다. 함께 회사를 설립한 친구들은 그를 그 단절로부터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그가 사랑, 시간, 죽음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아내고는 연극인들에게 부탁하여 각자 사랑, 시간, 죽음의 이름으로 그 앞에 나타나게 한다. 그 과정에서 하워드보다는 오히려 하워드의 친구들과 그 역할극에 참가한 연극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깨닫는 귀한 체험을 한다.


하워드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 참가하는데 그 모임의 인도자로부터 그 어떤 고통이라도 그 이면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워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지 모임의 인도자로 보이던 그녀는 사실은 하워드의 아내로, 딸을 잃은 후 하워드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지기를 원해 이혼한 전처였음이 영화 끄트머리에 알려진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를 찾은 하워드는 그녀가 딸이 그렸던 그림들을 정리해서 벽에 걸어 두고, 딸이 담긴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같이 딸을 잃었는데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 하워드도 힘겹지만, 같은 시도를 하게 된다.

아들을 잃은 친구 곁에서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삶에서 맞닥트릴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불평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과 대립하기도 하던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젊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먼지처럼 툴툴 털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서먹했던 관계가 회복되기도 하고 미처 보지 못했던 타인의 상처에 마음이 더 열리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친구를 위해 돕는 손길을 모으며 우리는 우리 사이를 흐르는 은혜의 물결과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아무리 커다란 고난이라도 그 이면에는 귀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것을 찾아내라고, 보고 누리라고 말한다. 어떤 삶이 내게 올 지 알 수 없지만,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어둠에 갇힐 것인가? 밝은 빛을 보고 따라갈 것인가는 순전히 내 의지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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