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외환위기 우려에 미국도 ‘일부 이해 반응’…3천500억달러 중 직접투자 비중 쟁점
▶ 구윤철, 베선트와 회동으로 협상 측면 지원…범정부 ‘올코트 프레싱’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
한미 관세 협상이 총 3천500억달러(499조원)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담을 위해 16일(한국시간) 함께 출국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현실적으로 마지막 각료급 대면 협상이 될 가능성이 커 양국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실과 산업통상부는 15일 언론 공지를 통해 김 실장과 김 장관이 16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고 각각 공지했다.
두 사람은 함께 워싱턴 DC로 이동해 대미 관세 협상의 '키맨'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협상할 예정이다.
이번 협의는 최대 쟁점인 3천500억달러 투자 구체화를 놓고 우리 측의 '수정 제안'이 제시되고 미국이 이에 '일부 반응'을 보인 가운데 이뤄져 눈길을 끈다.
우리 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 대표 역할을 맡은 김 장관은 지난 9월 11일, 추석 연휴 중이던 지난 10월 4일 카운터 파트인 러트닉 장관과 뉴욕에서 잇따라 만나 협상했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9월 협상서 김 장관은 한미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포함된 우리 측 '수정 제안'을 미국 측에 제시했다. 최근인 10월 4일 협상에서는 러트닉 장관이 한국 측의 외환 시장 불안 우려에 일부 공감을 표시하면서 미국 측의 일부 변화된 입장을 시사했다고 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미국 측에서 지금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왔다. 지금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협상은 3천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중 한국의 부담 능력과 외환 시장 불안 방지를 위해 '합리적 수준'에서 현금 투자 규모를 묶어두는 '안전판'을 확보하고자 하는 한국 측의 관심사에 미국 측이 어느 정도 화답할 것인지에 성패가 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예고한 대(對)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지만 이행 방안을 놓고는 큰 이견을 보여왔다.
한국은 7월 관세 협상 타결 때 직접 현금을 내놓는 지분 투자(equity)는 5% 정도로 하고 대부분을 직접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credit guarantees)으로 하되 나머지 일부를 대출(loans)로 채우려는 구상이었지만 미국은 앞서 일본과 합의처럼 '투자 백지수표'를 요구하고 있다.
이후 한국 정부는 ▲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의 투자처 선정 관여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수 없다는 강수를 뒀는데, 관세 협상 결렬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으며 사실상 '배수진'을 친 상황으로 평가된다.
다만 일각서 언급된 것처럼 미국이 한국과 협상에서 3천500억달러 전체를 단기에 '선불'로 '입금'하라는 식의 요구가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앞선 미국과 일본의 '투자 MOU'에서도 미국과 일본은 개별 투자 프로젝트를 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요구하면 45일 안에 일본이 자금을 사업 추진 특수목적법인에 자금을 보내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일본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현금 투자, 대출, 보증이 모두 가능한 것으로 현금 투자 비중이 사전에 정해진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직접 투자 비중이 1∼2%에 그치고 나머지는 대출과 보증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에 투자처와 투자 방식 선정 주도권을 주는 일본식 방식대로라면 향후 진행되는 프로젝트마다 미국이 현금 투자 위주의 요구를 할 수 있어 결국 어느 순간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에 육박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사전에 '안전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그간 러트닉 장관과 협상에 임하던 김 장관에 더해 김용범 정책실장까지 가세한 것은 향후 중대 분수령이 될 APEC 계기 한미 정상 회동을 앞두고 구체적 성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5∼16일(미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계기에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만나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도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 지속이 부담스럽고, 미국 역시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조선 등 자국 산업 부흥과 공급망 강화에 한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상호 유연한 해석이 가능한 문구를 중심으로 절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이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를 '필요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통화 스와프 체결은 연방정부가 아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권한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우리 측 주장이 한국의 '부담 능력 제한'을 강조하기 위한 협상 전략 차원의 카드라는 관측도 있다.
협상 소식통은 "그간 협상을 통해 미국 측에 계속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게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했고 미국 측도 최소한 이에 관한 일정한 이해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아울러 외견상 통상과 다른 외교안보의 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의 숙원 과제인 일정 농도 이하의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허용 등에 관한 논의도 결과에 따라서는 한미 관세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분야에서 성과가 도출되는 경우 대미 투자 비용에 관한 국내 여론의 평가가 한층 관대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또한 최근 중국 정부의 희토류 등 전략 자원 무기화 움직임과 한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상징인 한화필리조선소 제재 등 상황이 한미 타협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미 공급망 협력이 중국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는 반대로 한미 간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미국이 한국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한국에 관한 배려가 필요하는 주장을 펼 수 있는 추가 카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