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추석이 ‘되시는’ 사람들
2025-10-14 (화) 12:00:00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커서 뭐가 될 거니?” 세상이 변하자 답도 바뀌었다. 과학자, 대통령, 선생님에서 아이돌, 배우, 스포츠스타로(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아이들에게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란 별로 없다. ‘부모가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한 아이에게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했을 때 어른들은 어쩐지 미안해졌다.
■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 시 ‘저녁에’) “나는야 주스 될 거야~ 나는야 케첩 될 거야~”(동요 ‘멋쟁이 토마토’) 미지의 것, 기발한 것이 되는 것을 향한 상상은 문화예술 한정이다. 현실에서 서로 되라고 비는 것은 ‘부자’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 2001년 대히트한 신용카드 광고 카피는 낡을 줄을 모른다. 2015년, 2021년 리메이크 CF가 제작됐고, 컵라면 ‘부자될라면’도 나왔다.
■ 연휴에 사람들은 ‘추석’이 돼야 했다. “편안한 추석 되세요” “풍요로운 한가위 되시길” 하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동네마다 걸린 정당·국회의원 추석 인사 걸개글에도 온통 ‘무슨무슨 추석 되시라’는 인사. 국립국어원은 “주어(듣는 사람), 보어(추석이), 서술어(되다)가 의미상 호응하지 않는다”며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했다. ‘되다’의 표준국어대사전 1번 정의는 “다른 상태나 성질로 바뀌거나 변하다”. 사람은 추석으로 바뀌거나 변할 수 없다. 추석은 보내고, 즐기고, 쇠는 것이다.
■ 그러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약속은 다시 하면 된다. 국립국어원도 “쓰면 안 되는 말은 아니다”고 했다. 많이, 오래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러운 말이 될 것이다. “추석 되시라”는 말은 애초에 어디서 왔을까. 설이 분분하다. “너의 청춘이 아름답길” “당신의 노후가 평안하길” 등과 같은 맥락이라는 설, “추석 보내세요”보다 “추석 되세요”가 리듬이 간결하다는 설… 커피도 ‘나오시’는데, 추석도 ‘되시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어차피 문법, 어법 따지면 ‘꼰대’ 되는 세상이기도 하고.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