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문화] 둥근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마음

2025-10-14 (화) 12:00:00 김채연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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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여행지에서 유난히 밝은 보름달을 봤다. 모난 곳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하늘에 그려진 둥근 형상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특별한 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덮어 보름달을 보지 못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한 달 주기로 빠짐없이 기울었다 차오르는데, 왜 우리는 유독 추석이면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까?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존재여서 마음이 가는 것일 수도 있고, 농경 사회에서 풍요의 상징이어서 그렇다고도 한다.

그런데 과연 밤하늘 가운데 떠 있는 것이 네모나거나 뾰족뾰족한 모양이어도 그럴까?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우리는 둥글둥글한 곡선 형태를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로 1970년대 팬츠와 미란다는 생후 7일 이내의 신생아들에게 여러 쌍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실험을 했는데, 곡선과 직선 여부만 다르고 다른 요소는 같았다. 둘 중 어떤 이미지를 얼마나 더 바라보는지 측정한 결과, 아기들은 일관되게 곡선 형태를 더 오래 바라봤다. 이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곡선 형태에 대한 지각적 선호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곡선 선호 경향은 문화나 성별의 차이와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심지어 고릴라나 침팬지에게서도 발견된다. 생명체의 움직임이 곡선의 형태를 이루기 때문에 곡선과의 상호작용이 더 쉽고 자연스럽다는 해석이 이 연구 결과를 뒷받침한다. 달을 향한 우리의 바람도 그 둥근 모양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반달이나 눈썹달이 아닌 보름달을 향한 마음의 또 다른 시각적 근거는 단지 부드러운 곡선뿐 아니라, 빠진 구석이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모양에도 있다. 지각심리학 연구들은 우리가 비정형적이고, 균일하지 않으며, 불연속적인 형태보다 정형적이고 균형 잡힌 형태를 좋아하는 경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형적인 것이 더 간결하고 단순하며, 반듯하게 꽉 찬 원은 우리의 지각의 ‘원형(原型)’에 더 가깝다. 보름달이 주는 충만함은 이런 모양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이처럼 반듯하게 둥근 것은 보기에 편안하고 즐거우며, 무엇보다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고 여겨진다. 어쩌면 우리가 둥근 모양을 좋아해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보름달 때문에 둥근 모양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정서와 관련이 있는 편도체 연구에서도 곡선에 비해 직선으로 된 사물들에 대한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난다. 각지고 뾰족하며 온전하지 않은 것은 보기만 해도 그것을 만질 때 느껴지는 위협을 상기시키며, 둥글고 온전한 것은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촉감을 떠올리게 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환기한다.

하지만 꼭 추석날이 아니면 어떻고 완벽하게 둥글지 않으면 어떠랴.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을 빌어 나와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와 더 큰 범위의 무언가를 위해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 그 자체가 이미 귀한 것이 아닐까.

<김채연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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