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자휴전 현장] ‘730여일 기다림도 끝’ 기대에 들뜬 텔아비브… “땡큐 트럼프”

2025-10-12 (일) 1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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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광장에 구름인파, 주최측 50만명 추산… “마지막 집회 이길” “내년 평화상은 트럼프”

▶ 네타냐후 언급엔 야유… ‘중재역할’ 위트코프·쿠슈너·이방카 연단 등장에 분위기 절정
▶ “치유·회복에 오래 걸릴것”… “하마스 없앨수 있을까” 1단계휴전 이후 평화지속 여부 우려도

[가자휴전 현장] ‘730여일 기다림도 끝’ 기대에 들뜬 텔아비브… “땡큐 트럼프”

(텔아비브=연합뉴스) =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미술관 앞 ‘인질 광장’에 휴전 합의를 환영하며 인질 석방을 기대하는 시민들이 운집했다. 2025.10.12

"매주 이 광장에 나와서 인질 가족들을 도왔는데…그들이 정말로 풀려나면 오늘 집회가 마지막이 될 수 있겠지요."

11일(현지시간) 오후 이스라엘 텔아비브미술관 앞 '인질광장'.

백발의 자원봉사자 샤이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2년여만에 남은 모든 인질이 귀환한다는 소식을 두고 "너무 오래 기다린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연합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구상'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1단계 휴전에 합의한 직후 이스라엘을 다시 찾았다.

예정된 토요일 정기 집회는 오후 8시에나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인질 석방 소식으로 기대감에 들뜬 사람들이 점심 직후부터 광장에 모여들며 북새통을 이뤘다.

검증된 숫자는 아니지만 주최측은 50만 명으로 추산했다.

기타 반주에 맞춰 "야세 샬롬, 베알 콜 이스라엘"이라며 평화를 희망하는 히브리어 노래를 떼창하는 소리가 광장에 울려펴졌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당신들을 기다린다"는 그래피티를 그리는 퍼포먼스도 눈에 띄었다.

가상현실(VR) 기기로 가자 땅굴에 갇힌 인질들의 1인칭 시점을 체험해본 중년 남성 티브는 "솔직히 좀 무서웠다"며 살짝 미소지었다. 그는 "힘든 일을 겪은 인질들이 돌아온다는 행복한 소식에 딸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이스라엘·미국 국기를 함께 들고 있던 백발의 유대인 라미는 "이스라엘인이기 때문에 여기에 모인 것"이라는 말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번 일은 트럼프가 해낸 것"이라며 "트럼프가 주먹을 내려치며 '이제 충분하다'고 윽박지르니 그제서야 국경 양 쪽의 극단주의자들, 하마스와 유대인 민족주의자 모두 '트럼프 말을 들어야겠다'며 자세를 바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아쉽게 됐지만, 내년 노벨상은 무조건 트럼프가 받지 않겠나"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라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번 휴전을 트럼프 대통령의 공으로 돌리는 분위기였다.

자유의여신상 모습으로 분장한 한 여성은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 아래 "인명을 구하는 행동은 세상의 영원한 감사를 받을 것"이라고 적힌 커다란 포스터를 들고 성조기를 흔들었다.

어떤 시민은 '고마워요,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기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해오기도 했다.

인질 가족들은 마이크를 잡고 "트럼프, 당신이 가장 필요한 때에 역사를 만들었다"며 감사를 표했고,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 위로 "트럼프에게 노벨상을"이라고 적힌 대형 피켓이 펼쳐졌다.

오후 8시 20분께 연단에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오르자 시민들은 열광했다. 위트코프와 쿠슈너는 이번 휴전합의를 끌어낸 주역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위트코프 특사가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여러분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입을 뗄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님이…"라며 이어간 말은 사람들의 야유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현 이스라엘 내각이 하마스에 대한 군사작전에 열을 올리며 인질 귀환을 등한시했다는 불만의 표출이었다.

사복 차림에 소총 어깨에 걸고 위트코프 특사의 연설을 듣던 나할여단 소속 군인 노암은 "이제 더는 동료들의 죽음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게 기쁘다"고 말했다. 가자시티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했던 노암은 이날 부대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것도 미국 덕이라며 웃어 보였다.

이날 연합뉴스가 만난 이스라엘 시민들은 휴전 합의를 반기는 가운데서도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한 하마스의 만행 이후 광장에 마련된 텐트를 줄곧 지켜온 나할오즈 키부츠(집단농장) 주민 나오미는 "전쟁이 완전히 끝난다는 희망이 보여서 다행"이라며 "군인도, 아이들도 더는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오미는 "기대가 크지만 걱정도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벌써 인질 시신을 다 못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나"라고 짚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기습하며 민간인 1천200명을 살해한 하마스의 만행을 두고는 "하마스는 다에시(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이념인데, 그걸 어떻게 없앨 수 있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복수는 옳지 않다, 성경에도 그렇게 써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군사작전 과정에 가자지구에서 6만7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일을 가리킨 말이다.

가자지구 접경지 아슈켈론 출신인 니르는 "희생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에 오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고, 이후 이스라엘의 봉쇄와 하마스의 집권이 이어지며 갈등이 고조된 것이 비극을 잉태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그 전까지는 가자 주민들이 이스라엘로 넘어와 일하고 함께 어울렸다는 것이다.

니르는 "트럼프는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고, 네타냐후는 말뿐인 사람"이라며 "이번 전쟁으로 인한 흉터는 살갗이 아닌 뼈에 새겨졌고, 이는 인질들이 모두 돌아오더라도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바 음악축제 피해자들을 기리는 천막에서 10대 자원봉사자 로니는 인질 엘카나 보보트(36)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정말로 돌아온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벌어진 많은 일들이 그를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로니는 축제 현장에서 생존했던 로이 샬레프가 남자친구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날 자살한 일을 거론하며 "끔찍한 일이다, 치유와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쟁 발발 때부터 인질 납치 시간을 세고 있는 광장 한 켠의 대형 시계는 735일 14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약속대로 휴전 합의가 이행돼 인질들이 풀려나게 된다면 737일, 혹은 738일로 이 시계도 멈추게 될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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