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北, 7년만의 유엔출장서 핵보유 대못·입지확대 동시 시도

2025-09-29 (월) 03: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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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7년만의 유엔출장서 핵보유 대못·입지확대 동시 시도

유엔총회 연설하는 김선경 북 외무성 부상[로이터]

7년 만에 유엔 총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 북한은 29일 기조연설을 통해 '핵 포기 절대불가론'을 주장하는 동시에, 중·러 주도의 반(反)서방 세력의 일원으로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 입지를 넓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초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며 다자 정상외교 무대에 데뷔한 데 이어 유엔총회를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하는 무대로 활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유엔총회장에 10번째 연설자로 연단에 올랐다.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중 북한에서 고위급 대표가 연설한 것은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북한은 지난 2014∼2015년엔 리수용 당시 외무상이, 2016∼2018년 리용호 당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했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인 2019년부터 작년까지는 별도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고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가 대신 연설해왔다.

수년 만의 고위급 인사 파견인 데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포기를 전제로 한 북미대화 의향을 밝힌 직후여서 김 부상이 총회 연설에서 어떤 메시지를 낼지를 두고 관심이 쏠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북한 관영매체들에 이튿날 보도됐다.

김 부상이 이날 연설에서 비핵화 불가 입장을 강조했다는 점은 작년 김성 대사 연설 때와 비교해 큰 틀에서 달라진 점이 없었다.

김 부상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에게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권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우리는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 대사가 작년 연설에서 "전체 조선 인민이 피어린 투쟁으로 이룩한 우리 국위(國位)를 놓고 그 누구와도 흥정하지 않을 것", "미국의 그 어떤 정권도 달라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상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핵보유국'이라는 지위를 강조한 것과 달리 김 부상은 이날 연설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굳이 힘줘 주장하지 않았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쪽보다는 핵무기 보유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오히려 가자지구 전쟁과 같은 최근 국제 분쟁 격화의 책임을 서방 패권국에 돌리면서 자국이 국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국가라는 인식을 유엔 회원국들에 선전하는 데 주력했다.

김 부상은 "지금 국제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세상을 목견하고 있다"며 서방 패권국의 전횡으로 유엔 헌장과 국제 규범이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을 부각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김 부상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 전반이 침체와 불안정의 늪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국제 규범과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는 주범이라는 사실은 외면한 채 유엔 개혁 필요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 부상의 이 같은 발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선 것을 계기로 중·러 주도의 반서방 세력의 일원으로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시도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부상은 이번 뉴욕 방문 기간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부 장관, 베네수엘라의 이반 힐 외교부 장관 및 니카라과 데니스 몬카다 외교부 장관을 만나는 등 '북한 우호국' 인사들과 잇따라 회동하기도 했다.

한편 김 부상은 "우리나라를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여지를 열어두기도 했다.

김 부상은 또 한미일의 군사 협력을 비난하며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사용하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는 등 비난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한국이 이날 김 부상의 연설에 답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도 작년 총회 연설 때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지난해 김성 대사의 유엔총회 연설 직후 주유엔 한국대표부의 김상진 차석대사는 답변권을 행사해 북한이 핵무기 추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미 등을 비난한 것을 두고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김 차석대사는 당시 "불법적이고 계속해서 증가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바로 한국과 미국이 확장된 협력을 강화하는 주된 이유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날 김 부상 연설 후에는 따로 한국 측 대표의 답변권 행사가 나오지 않았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END'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약자다. 이 대통령은 "'END'를 중심으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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