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폐섬유증 극복한 유열 “죽음 앞에 가니 삶 보여, 더 많이 사랑하길”

2025-09-22 (월) 02: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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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폐 이식 성공, 투병 8년 만에 복귀…생사 고비 넘나들며 유언장 작성도

▶ “가족 지킬 기회 달라고 눈물로 기도…초6 아들 안아줄 수 있게 돼 감사”
▶ 내년 데뷔 40주년…”삶은 神의 선물, 경건하게 노래하며 많이 나누고 싶다”

폐섬유증 극복한 유열 “죽음 앞에 가니 삶 보여, 더 많이 사랑하길”

가수 유열이 최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9.22 [연합]

"죽음 앞에 가보니까 비로소 삶이 보였습니다."

가수 유열(64)은 2017년께부터 앓아온 폐섬유증이 악화하면서 지난해 생사가 오가는 험난한 시간을 보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이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바라보는 생생하고 힘 있는 한 마디 고백을 낳았다. 나긋나긋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굳은 확신까지 느껴졌다.

유열은 지난해 5월 증상 악화로 쓰러져 중환자실을 오가며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다 같은 해 7월 폐 이식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회복했다. 지난해 10월 퇴원한 뒤 재활에 힘을 쏟은 끝에 지난달 방송된 KBS '다큐 3일' 안동역 편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하며 공식적인 활동에도 나섰다.


최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유열은 지난해 투병 당시를 떠올리며 "감정도 공감도 사라지고 완벽하게 무기력해진 '멍'한 상태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감사한 추억과 부끄러운 추억이 적나라하게 떠올랐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결국은 신의 선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깊은 회개(悔改)의 날들을 보낸 뒤 포장된 삶 말고 '참삶'의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아직 어린 아들과 아내를 지켜줄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떠올렸다.

유열이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약 8년 전인 2017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흡이 불편해졌고, 계단이나 언덕을 올라갈 때면 이상하리만큼 숨이 가빠졌다. 호흡에 온몸의 힘을 끌어 쓰다 보니 체중은 40㎏대까지 빠졌다. 지난 2023년 11월에는 그가 수척한 모습으로 어느 교회 강단에 오른 영상이 공개되면서 투병 사실이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작년 5월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후로는 생사의 고비도 넘겼고, 폐 이식이 두 차례 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 시도 만에 수술이 성공해 유열은 '새 삶'을 찾게 됐다.

유열은 "병원에서는 처음에는 2∼3주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했다. 두 번의 이식이 무산되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신의 뜻에 맡겼다"며 "그때 내게 세 번째 (이식) 기회가 왔다. 일곱 시간에 걸친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이 지금까지 버틴 게 기적일 정도로 폐가 다 쪼그라들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술 4∼5일 후 부정맥 때문에 심정지와 유사한 상황도 두 번 겪어봤다"며 "사람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아들과 아내를 위해 유언장을 썼다"고 회고했다.

유열은 유언장에서 "진심으로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배려하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주변 이웃에) 나눔을 많이 실천하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지난 2023년 2월 칼빈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신을 경외하고 신앙을 지키라는 간곡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유열은 "죽음 앞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든다. 신이 나를 이 땅에 보낸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고민하며 유언장을 작성했다"며 "내가 내린 결론은 삶은 신의 선물이며,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빠'라고 외치는 초등학교 6학년 된 아들을 안아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고 돌아봤다.

유열이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면서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맡겨뒀던 이 유언장은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투병 기간 그의 아내는 호수 공원을 걸으며 "이 길을 남편과 함께 걷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유열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춘 뒤 눈물을 글썽였다.

유열은 지난해 10월 말께 약 반년간에 걸친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깊어져 가는 가을 하늘 아래 각자의 표정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자 선물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환자에게는 하나하나 놀라운 기적일 수 있다. 목을 한번 돌리기 위해, 한 걸음을 떼기 위해 땀방울을 흘리는 환자가 많다"며 "그런 경험을 겪고 나니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유열은 침대에 걸터앉는 것부터 시작해 한 걸음, 두 걸음, 100m, 200m, 500m 등 걷는 거리를 차츰 늘려가며 재활에 몰두했다. 지금도 주 2회 재활센터를 찾고, 매일 1∼2㎞씩 산책한다. 그는 "일상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지난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등장한 그는 특유의 서정적인 목소리로 '이별이래', '단 한 번만이라도', '어느 날 문득', '가을비', '사랑의 찬가' 등의 대표곡을 냈다.

유열은 또한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을 진행하며 13년간 매일 청취자를 만났고, 이 때문에 '아침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내년 데뷔 40주년을 앞둔 그는 "이제는 꾸밈은 줄이고 더 경건한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듣는 이에게 진정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며 "이전보다는 노랫말의 메시지를 더 깊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그동안 느끼고 경험한 것을 가스펠 음악으로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한 곡씩 노래를 녹음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다만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정해놓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열은 그러면서 "너무 많은 분의 사랑을 받은 만큼, 앞으로 많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히 폐 이식을 통해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만큼 그는 아내와 함께 사후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다음 달 28일(한국시간) 장기기증자 가족과 수혜자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소리합창단의 정기공연 무대에도 오른다. 이 무대는 그가 퇴원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내년께 유열과 그의 음악을 조명하는 TV 프로그램 녹화도 계획하고 있다.

유열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1980년대 가수 생활로 바쁠 때는 미처 몰랐지만, 험준한 산과 골짜기를 넘어 보니 비로소 깨달은 삶의 단면이다.

"삶은 그 자체가 과정이자 신의 선물입니다. 할 수 없는 것, 또는 갖지 않은 것에 마음을 쓰면 자괴감과 패배 의식만 생길 뿐입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나의 탤런트(재능)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면 아름다운 과정을 만들어 나가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소중하듯이, 당신도 소중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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