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손 묶고 중국과 AI 전쟁하는 셈” 지적…일각선 “비자 개혁 위한 좋은 시작”
▶ 비자 소지자들 미국으로 급거 귀국하며 ‘분노의 질주’…탑승 비행기서 내리기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미국 내 전문직 취업이 가능한 'H-1B' 비자의 수수료를 100배 증액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이 오히려 미국 기업에는 큰 타격이 되고 타국에는 반사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는 전문직 비자 수수료 대폭 인상이 초래한 혼란을 살피면서 이번 조치가 미국 경제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주고 캐나다를 비롯한 타국에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했다.
기술 기업들의 연합체인 '챔버 오브 프로그레스'의 애덤 코바체비치 대표는 NYT에 이번 조치로 기업들이 H-1B 비자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 변화가 미국의 인공지능(AI) 분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는 중국과의 AI 전쟁에서 한 손이 등 뒤에 묶인 채 싸우는 것과 같다"며 "AI 분야의 최고 인재는 한정돼 있으며 그중 일부는 외국 출신"이라고 짚었다.
미국 내 기술 기업 사이에서 불공정한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벤처 투자업계에서는 관세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자 수수료를 내거나 비자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은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대기업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스타트업 창업 지원 회사 와이 콤비네이터의 게리 탠 CEO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결정은 스타트업의 기반을 와해시키는 일"이라면서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를 포함한 모든 해외 기술 허브에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AI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 개발자들에게 다른 곳에서 개발하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가 타국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캐나다의 투자회사 나인포인트 파트너스의 알렉스 탭스콧 전무이사는 이번 비자 수수료 인상으로 캐나다가 글로벌 인재가 선호하는 목적지가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손해가 캐나다의 이익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국경 단속·이민 센터의 로라 리스 국장은 NYT에 이번 10만 달러 비자 수수료가 H-1B 비자 프로그램 개혁의 "좋은 시작"이라면서 "너무 많은 고용주가 이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어 미국인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한편, 이번 비자 수수료 인상 조치로 외국인 직원을 많이 고용한 미국 기업들은 해외 체류 중인 H-1B 비자 보유 직원들에게 급거 귀국을 지시했고 근로자들은 급히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로이터통신은 21일 유명 영화 '분노의 질주'(Fast and Furious)에 빗대 이들의 상황을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있던 인도인 몇 명은 새 규정이 시행되면 미국에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어 휴가 계획을 단축했다고 전했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고용주로부터 이번 조처와 관련된 명령이나 메모 등을 받은 인도인 승객들이 이미 탑승해있던 비행기에서 내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해당 항공편이 3시간 이상 지연되는 일도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도 H-1B 비자 소지자들이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 도착하자마자 미국으로 다시 급히 돌아갔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이들 근로자 중 일부는 온라인에 이번 경험을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당시 여행 금지 조처가 시행되기 전 급히 미국으로 돌아갔던 경험에 비유하기도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 여성은 온라인을 통해 뉴욕발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는데, 회사 변호사로부터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시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위해 이동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간신히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던 이 여성은 "실망과 슬픔, 좌절감이 뒤섞인 기분이다"라고 토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