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출장·투자 ‘올스톱’… 직원들 기약없는 미 입국

2025-09-11 (목) 12:00:00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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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LG 이민단속 후폭풍
▶ 글로벌 기업들도 ‘비상’ 걸려

▶ 출장 앞둔 직원들 ‘발만 동동’
▶ 한인 기업 “사업차질 불가피”
▶ 비자개선 추진, 현실은 회의적

출장·투자 ‘올스톱’… 직원들 기약없는 미 입국

지난 4일 조지아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에서 체포된 한국인들의 모습. [로이터]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 단속의 후폭풍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한국인 300여명을 포함해 475명이 구금된 이번 사건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른 다국적 기업들도 “다음 차례는 우리일 수 있다”며 불안에 떨면서 직원들의 출장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주 한인 기업들 역시 그동안 까다로운 비자 제도로 인해 우수인력 채용에 애를 먹어왔다며 이번 기회에 꽉 막힌 비자문제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 내 일자리 문제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숙련 기술자들이 정식 취업 비자인 H-1B를 받지 못해, ESTA(전자여행허가제)나 B-1 상용 비자를 통한 ‘우회 출장’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 비자는 유급 노동을 허용하지 않으며, 결국 불법 고용으로 규정돼 단속의 빌미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한국인 전문인력 전용 취업비자(E-4) 신설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가운데 호주에는 연간 1만5000명, 싱가포르와 칠레에는 각각 5,400명과 1,400명의 전문인력 비자 쿼터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미국 내 최다 투자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제도적 혜택에서 소외돼 왔다.


이민 단속에 대한 불안감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이민 전문 로펌에 따르면 “자사 직원이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다국적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아예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주 체포 이후 외국인 직원을 둔 다국적 기업들이 출장 계획을 취소하고 법률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대규모 단속이 불법 입국자와 비자 위반자를 구분하지 않는 만큼 외국인 근로자들은 미국행을 기피하게 되고 투자자들도 주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이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남편이 대기업 하청업체 직원인데 B-1 비자로 미국에 1주일간 출장을 갔다가 추석 이후에 몇 달간 다시 나가야 한다”며 “차라리 출국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혹시 모를 체포 우려 때문이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의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파견 인력 비자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지 않은 한국 정부의 실수이며, 불법을 묵인해온 대기업도 책임이 크다”고 꼬집었다.

미주 한인 기업들 역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LA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비자 문제 때문에 인턴 등 한국의 우수 인력을 제때 채용하지 못해 사업에 차질이 많았다”며 “미국 현장에서 한국 인력이 갖춘 전문성과 노하우는 대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제 단속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커진다면, 결국 한국 우수인력 채용과 투자의욕은 급속히 식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비자문제 해결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전망은 녹록지 않다. 특히 미국 내 일자리 문제가 얽혀 있어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는 회의론이 많다. 불법 이민자와 외국인 체류 문제에 민감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단박에 풀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행정부가 비자 발급을 완화·확대하는 대신 일정 규모의 미국인 채용을 조건으로 내세우거나, 부족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기술 교육·전수 의무화를 대가로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 투자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외국 인력 유입을 동시에 옥죄고 있어 모순이 불가피하다”며 “제도적 보완 없이는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열기가 식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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