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체제 정당성 강화하고 향후 美와 대화서 협상 우위 확보”
▶ “역내 새로운 냉전 역학구도 부상…북중러, 동맹 아닌 편의의 협력 관계”
▶ “딸 김주애 차기 지도자 가능성 커…행사에 대동해 왕조 지속성 부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로이터]
미국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대미 협상력을 강화함에 따라 향후 비핵화 협상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가 접촉한 전문가들은 또 김정은 위원장이 열강인 중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여 북한 내부적으로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다고 평가했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김정은은 외교 형세가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우호적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한 번에 한 국가씩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일러 선임고문은 "중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존중' 또는 '이해'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러시아만큼 적극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중국은 열병식에서 김정은에게 상석을 제공함으로써 북한과 비핵화를 논의하지 않고도 관계를 진전시킬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관측했다.
엘런 김 한미경제연구소(KEI) 학술국장은 "이 회동은 향후 비핵화 대화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김정은은 러시아, 중국 정상 옆에 서서 북한이 이들 국가와 나란히 핵보유국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다시 보낸다"고 말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김정은의 열병식 참석 목적은 시진핑과 관계를 강화하고, 푸틴과 관계를 재확인하며, 다른 반미 독재 국가들과 공조하는 것이다. 북중러 3국 정상의 회동은 트럼프가 북한과 어떤 비핵화 합의를 하든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와 인정이 필요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여 석좌는 "김정은은 푸틴과 시진핑을 만남으로써 국제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한다. 특히 김정은이 어느 시점에 트럼프를 만나기로 결정할 경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라스카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 조교수는 "김정은이 시진핑과 푸틴과 함께 서는 것은 북한이 고립되지 않았고 반미 블록의 구성원이라는 이미지를 투사한다. 이는 김정은에게 강력한 우방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 북한 내에서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미국, 한국, 일본에는 북한이 더 큰 (지정학적)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고 분석했다.
라스카 조교수는 "김정은의 첫 다자 외교 행사는 수년간의 대북 제재, 코로나19로 인한 고립, 경제적 난관을 겪은 이후 자신감 회복을 보여준다"면서 "북중러 정상이 함께 등장한 것은 3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협력하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며, 김정은은 이 협력 관계를 자신의 권한과 협상력을 강화하는 지렛대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 대리는 "중국과 긴장된 관계 회복에 도움 되고, 트럼프 집권 하의 미국과 문제가 있는 여러 국가와의 관계에서 북한의 지위를 개선할 수도 있다. 또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대화 재개 여부를 고려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서울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김 학술국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지 일주일만에 북중러 정상이 만나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전략적 형세를 구축함으로써 역내에 새로운 냉전 역학구도의 부상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북중러의 공개적인 3자 연대 과시는 미국에 매우 나쁜 소식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관세가 동맹 및 파트너와의 관계를 상당히 약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3국이 당장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협력할 뿐이지 그 관계가 지속 가능하거나 동맹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랩슨 전 대사 대리는 "선정적인 사진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직 통일된 블록이 아니다. 트럼프가 북중러 각 국가와 '협상'을 하려고 관여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사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라스카 조교수도 "계산된 지정학적 권력 게임"이라면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공식 동맹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저항이라는 공통 분모에서 탄생한 편의의 축(axis of convenience)"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승절 행사에 딸 김주애를 데려온 게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여 한국석좌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보다는 딸 김주애가 차기 지도자일 가능성이 갈수록 더 커 보인다. 이렇게 주목받는 행사에 딸을 데려옴으로써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가까운 동맹인 러시아와 중국의 눈에 그녀의 정당성을 강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라스카 조교수는 "딸 주애를 대동한 것은 왕조를 상징적으로 부각해 (체제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사일러 선임고문은 "김정은은 주애가 후계자이자 북한의 미래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딸을 데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또 딸이 국제 행사에서 북한을 대표하는 경험을 직접 하게 할 좋은 기회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