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사억만 지나인과 더불어 인간적 양심에 따라’ 독립을 선언했다.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선언서 속 문장이지만, 이 구절에서 눈에 밟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지나인’이다.
오늘날 누군가 이 단어를 사용한다면, 분명히 논란의 중심에 설 것이다. 지나(支那)는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인을 멸시할 때 쓰던 대표적인 혐오 표현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독립운동가들은 자주독립을 외치는 선언문에서 ‘중국인’ 대신 ‘지나인’을 썼을까?
이 단어의 기원은 뜻밖에도 동방이 아닌 남방에서 왔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지던 시기, 산스크리트어 C?na?진(秦)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명칭?가 ‘지나’라는 음역어로 번역되었다. 당시 중원 안에서도, ‘지나’는 불경에서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당 현종의 시 「題梵書(재범서)」에는 ‘지나 제자(支那 弟子)’라는 표현이 나온다. 단어의 본뜻은 없다. 단지 당시 사람들을 뜻하는 ‘치나’라는 발음을 가장 유사하게 흉내 낸 음차어일 뿐이었다.
이후 메이지 시대 일본이 서양식 지리학과 지명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China’를 ‘Shina(支那)’로 표기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교과서, 우편 수표, 학술 용어 등에서 ‘지나’를 일상적으로 사용했고, 식민지 조선도 자연스럽게 이 말을 받아들였다. 3·1운동 당시에는 ‘지나’가 멸칭이 아니었고, 오히려 중국과 조선이 식민의 폭력 아래 함께 있다는 연대의 감각으로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단어는 다른 운명을 걷기 시작한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일본은 중국인을 ‘지나병’이라 부르고, ‘폭도 지나인’이라는 말을 대대적으로 사용하며 침략의 정당성을 선전했다. ‘지나’는 멸칭이자, 패전국에 붙는 경멸의 낙인이 되었다. 1946년에 와서야 중화민국은 일본에 ‘지나’ 사용 중단을 외교적으로 요구했고, 일본 외무성도 이를 수용해 공식적으로 ‘중국(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단어는 그 시대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살아남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때로는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단어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왜 ‘중국인’이 아닌 ‘지나인’을 불렀을까. 그리고 그 단어는 왜 오늘날 가장 민감한 외교 단어 중 하나가 되었을까.
단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권력이, 시대가, 감정이, 관계가 들어 있다. ‘지나’는 원래 중립적인 단어였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바뀌자 의미도 달라졌다. 말은 무기였고, 침략의 도구였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1919년의 ‘지나인’은 오늘날의 ‘지나인’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독립선언서 속 ‘지나인’은, 적국이 아니라 친구였다. 함께 식민의 사슬을 끊어내야 할 형제 같은 존재였다.
이제는 낡고 잊힌 그 단어가,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혐오의 언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였던 순간도 함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단어를 피할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선택 앞에서, 단어 하나에도 역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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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ㆍ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