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무릎에 내 심장을 묻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라는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의미가 곧바로 와 닿지 않았다. ‘상처받은 무릎(Wounded Knee)’은 상징일까, 은유일까. 여러 생각 끝에, 그것이 실제 지명이자 미국 원주민의 눈물겨운 역사를 품은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목의 번역을 ‘내 마음을 묻다’로 할지 ‘내 심장을 묻다’로 할지 지금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 디 브라운(Dee Brown)은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나 아칸소에서 자란 저명한 작가다. 책은 1860년부터 1890년까지 약 30년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떻게 학살당하고, 억압당했으며, 문화와 공동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그들의 시민성과 문화는 체계적으로 파괴되었고, 잇따른 약속의 파기로 인해 백인 정복자들에 대한 불신은 점점 깊어졌다.
원주민들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어려웠다. 19세기 말 백인 사회에서 원주민 생존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사와 추장들의 구술을 토대로 한 기록이 시작되었으나, 그마저도 종종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다. 그런 가운데 디 브라운은 이 책을 통해 원주민들이 겪은 박해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던 책이었는데, 예정된 한국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다 읽지 못한 채 반납할까 하다가, 여행 짐에 넣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저려오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끝까지 책을 덮지 않았다.
책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학살을 충격적인 묘사로 전한다. 디 브라운은 이 논픽션 저서에서 수많은 부족과 그들의 고통을 조명하지만, 특히 평원 인디언, 샤이엔족, 아라파호족에 집중한다. 그 비극의 역사는 1492년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단 10년 만에 수십만 명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에도 백인들은 원주민을 끊임없이 서쪽으로 몰아냈다.
1834년, 미국 정부는 원주민과의 상업 관계를 금지하고 평화를 위한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원주민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었고, 백인들은 조약을 어기며 서쪽으로 침투했다. 특히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백인들은 서경 95도선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광산 지대를 침범했다. 원주민 보호구역조차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처럼, 원주민들도 각자의 처지와 성격,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문화와 권리를 지키려고 끝까지 저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백인을 믿고 따르다 학살당했고, 또 어떤 이는 평화를 추구하다 끝내 무기를 들었다. 뇌물을 받고 같은 족속을 배반한 사람도 있었고, 백인 사회에 동화하려고 이름을 바꾸고 원주민 사회를 떠난 이도 있다.
백인과 정부 관리들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상관은 부하의 잔인함을 묵인했고, 원주민을 인간이 아니라고 하며 법률 적용을 거부한 정부 관리도 있었다. 원주민들은 땅의 정당한 소유자였음에도 지하 광물권을 강제로 팔아야 했고, 산불이 나면 그 책임을 원주민에게 떠넘기는 가짜 뉴스가 퍼지기도 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원주민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춤춘 원주민은 하늘로 올려지고, 새로운 땅으로 내려와 오직 원주민만이 살게 된다’는 믿음은 빠르게 번졌고, 그들은 춤을 추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수년 전 다코타 주에서 보았던, 춤추던 수족(Sioux Tribe)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침내 지도자들이 쓰러지고, 마지막 남은 이들이 운디드 니 (Wounded Knee) 계곡을 지나갔다. 어쩌면 그들 지도자 중 한 명인 ‘크레이지 호스’의 심장이 그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이들이 총탄에 쓰러지고,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었다.
1890년 크리스마스가 지나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 명이 한 교회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선의.”
디 브라운의 강렬한 필치와 치밀한 조사가 담긴 이 책은, 서부 개척의 역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 찌는 듯한 여름날, 나는 왜 이 책을 끝내 손에서 놓지 못했을까? 지금도 종종 그 이유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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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