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셔에서] 처음 학교 가는 날

2025-08-14 (목) 12:00:00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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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큰 손자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라고, 딸아이가 젖은 목소리로 알려 왔다. 결혼 후 6년 넘게 아이를 갖지 못하다 얻은 아들이라 감격이 더 큰 것일까? 아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하루 종일 울다 웃다 하였다고 한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가족이 없는 미국에서 남편과 둘이 아이를 키워야 했다. 모든 것이 어설펐다.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던 시기라 좌충우돌하며 아이를 먹이고 입혔다. 다섯 살이 되어 처음 학교 가는 날 나는 아침 내내 허둥거렸다. 그 조그만 손을 잡고 학교 버스가 오는 길목까지 걸어가는 길에 가슴은 자꾸 울렁거렸다. 노란색의 버스가 와서 서고, 기다렸던 아이들이 하나둘 버스에 올랐다.

딸아이는 버스 계단을 오르다 말고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창가에 앉은 아이는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손짓을 하며 괜찮다고 잘 다녀 오라고 소리쳤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한 오빠들과는 달리 나는 초등학교를 의정부에서 마쳤다. 막내면서 하나뿐인 딸을 어린 나이에 서울까지 통학시키기가 안쓰러웠다고 했다. 아버지의 능력(?)으로 나는 이중 학적부를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는 의정부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서류상으로는 6학년 때 서울로 전학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 추첨권을 받기 위한 술책이었다. 처음 중학교로 등교하는 날,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삼월의 새벽에 엄마는 괜찮다는 나를 한사코 이기고 내 가방을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오셨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우리 집 근처의 길로는 다니지 않아 큰길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엄마의 눈에는 아직 애인 내가 서울까지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가야 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가방이 왜 이렇게 무겁냐고 답이 뻔한 질문을 몇 번이나 하면서 엄마는 버스가 올 때까지 내게 가방을 주지 않았다.

?다섯 살 애기를 학교 버스에 태워 보내도 되냐고 내게 물었던 큰 애는 아침에 등교할 때는 직접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집에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오도록 해 놓았단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전화로 추적할 수 있는 기기를 아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단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하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시간을 보낸 손자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전장이라도 나가 큰 승리를 이루고 돌아오는 장수의 얼굴이었다.

아들을 향해 달려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사위가 비디오로 찍어 내게 보내 주었다. 몇 년 만의 상봉인 양 끌어안고 아이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더니 뺨에 뽀뽀 세례를 한다. 감정에 격해진 엄마에게 몸을 맡기고 있으면서도 손자의 눈은 아빠가 가지고 온 스쿠터와 거기에 매달린 공룡 풍선에 가 있다. 집까지 타고 갈 수 있게 들고 나오면서 첫 등교를 축하하는 풍선을 준비한 모양이다. 겨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스쿠터로 달려가는 손자의 얼굴에서 다섯 살이었던 내 딸의 모습이, 처음 서울로 등교하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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