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울퉁불퉁 남자를 찾습니다
2025-07-31 (목) 12:00:00
성민희 소설ㆍ수필가
엄마는 딸 셋에게 늘 말씀하셨다. 사윗감은 눈이 퉁방울 같고 거뭇거뭇한 피부에 성격 화통한 남자면 좋겠다고. 유난히 자상한 당신의 남편이 답답하다 느껴질 때마다 미래의 사윗감을 들먹이며 원을 하셨다.
언니가 연애를 했다. 그때의 내 눈에는 알랭 들롱 같은 남자였다. 엄마는 눈을 내리깔고 달가워하지 않더니 헤어졌다는 소리에 바람 꽤나 피우겠더라 하며 좋아하셨다. 몇 년 뒤 언니는 쌍꺼풀진 눈이 봉실봉실 웃어 엄마의 울퉁불퉁 남성미에는 근처에도 못 가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자연스레 엄마의 바람은 내게로 내려왔다. 희야 신랑감은 박력 있는 남자로 골라야지.
하지만 나는 폐병 환자처럼 얼굴이 하얗고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남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 선택의 순간마다 내 시선과 엄마의 시선이 엇갈리는 지점에서 빙빙 도느라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해 보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이 남자 또한 엄마의 남자가 아니었다. 두 번째 사위도 실패였다. 세 번째 사위는 입맛대로 고르리라 벼르셨지만 웬걸.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서는 새 사윗감에게는 비 맞은 병아리라는 별명이 붙어 버렸다. 퉁방울표 남자는 정녕 없는 것일까? 엄마는 우락부락을 결코 만나지 못하고 세 딸을 놓쳐버렸다. 세월이 흘러 언니가 사위를 보았다. 보드라운 손에 솜털 보송보송한 남자였다. 박력 있고 화통한 남자가 우리 집에는 왜 이리도 귀한지.
결혼식을 앞 둔 딸이 데이트를 하고 들어와서는 투덜거렸다. 친구 생일 파티에서 약혼자가 너무 조용해서 실망했다고. 딸이 친구들이랑 어울려 춤을 추고 들어오니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앉아 있더란다. 그것도 딸의 핸드백을 무릎 위에 꼭 안고서. 불평하는 딸을 달래기는커녕 ‘남자는 어딜 가나 낯이 좀 두꺼워야지’ 해가며 불을 더 질렀다. 어느새 나도 엄마의 화통한 남자를 내 사윗감으로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그때는 그랬다. 막상 내 마음을 휘굴리는 우락부락 남자를 만나면 뭔가 모를 불안함이 먼저 생겼다.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면서도 편하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딸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더니. 나도 아버지 같은 남자를 찾았고, 딸도 자기 아버지 같은 남자를 선택하고 말았다. 딸과 둘이서 답답한 남자 운운하다 보니 친구들의 불평이 생각났다. 호탕함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남편을 가진 친구는 말했다.
집에서는 자물쇠라고. 하도 답답하여 불평을 했더니 밖에서 피곤한데 집에서까지 피곤해야겠냐며 짜증스러워하더란다. 반면 밖에서 조용한 남편을 가진 친구는, 집안에서의 자상함이 때로는 간섭으로 느껴져 귀찮다고 했다. 누가 더 좋은지 나도 헷갈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딸이 “생각해 보니 남한테 잘하는 남자보다 나한테 잘하는 남자가 낫겠다. 결혼 생활은 나와 그 사람 둘만의 관계잖아” 약혼자한테 기분 좋게 한 표를 던졌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도 변했다. 우리가 사위 흉을 보면 남편들한테 잘해라. 집안에서는 그런 남자가 최고라며 전혀 엄마답지 않은 말씀을 하신다. 다섯 번째 엄마 앞에 나타난 남자, 하얀 피부에 눈매가 선하고 부드럽기까지 한 손주 사윗감을 보시면서 울퉁불퉁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아예 결론을 내렸을까? 불행한 우리 엄마. 참고로 엄마의 세 아들은 이 심사 기준에서 애초부터 제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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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소설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