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펜은 여전히 벙커버스터보다 강하다

2025-07-02 (수) 12:00:00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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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공습의 군사적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 전장에서의 눈부신 승리만으로는 이란을 핵 없는 나라로 만들 수 없다는 지극히 중요한 요점을 놓치고 있다.

미국의 공격은 1년여의 군사작전을 통해 이스라엘이 이란의 “저항의 축”을 종이 호랑이로 무력화시켜버린 바탕위에서 이루어졌다. 필자는 미국의 공습이 대단히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정교한 장치,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구조적으로 견고한 환경에 의존한다. 이들 모두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한 14개의 벙커버스터로 심하게 훼손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공습으로 목표물이 대파됐다 해도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1-2년 가량 후퇴하는데 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2015년에 체결된 핵 합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10-15년간 억제했다.

사실 벙커버스터 폭탄보다 이스라엘의 줄기찬 공격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키는데 실질적으로 더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따르면 불과 2주 이내의 짧은 시간에 이스라엘은 최소한 14명의 이란 핵 과학자들과 그보다 많은 수의 최고위급 군 지도자들을 제거했고 미사일 발사대의 절반 가량을 파괴했다. 게다가 방공망까지 무력화되면서 이란 전역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됐다.


그러나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 사무총장이 지적했듯 이란은 여전히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공습이 있기 전에 지하시설에 있던 다량의 농축 우라늄을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농축 우라늄이 온전한 상태라면 이란은 이를 손쉽게 무기화할 수 있다. 반면 막대한 인명손실 없이 이란이 은닉한 우라늄을 폭격하기란 불가능하다.

결론은 분명하다. 이란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지 않게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협상과 사찰을 통해서다. 다시 말해 이란과 다시 한번 핵 거래를 체결해야 한다. 때로는 펜이 정말 칼보다 강하다.

미국의 공습에 대해 온갖 허풍을 떨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이제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협상타결에 필요한 정치적 자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난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란은 그 당시보다, 아니 사실상 수 십년 전보다 입지가 훨씬 약해졌다.

이란에게 요구해야 할 사항 중에는 전체 전력량의 고작 2%를 공급하는데 불과한 핵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제한은 물론 중동지역의 폭력과 불안정을 조장하는 민병대 조직들에 대한 지원 억제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란 정부가 국가의 혁명적 이력보다 자국민의 삶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란인들이 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핵심 이슈는 물론 우라늄 농축이다. 이란은 핵 비확산조약을 근거로 평화적 목적을 위해 우라늄을 농축할 권리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란의 농축역량 확보에 무조건 반대한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역 컨소시엄을 구축한 후 철저한 감독아래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낮은 등급의 농축 우라늄을 이란에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이란 공격을 지켜본 트럼프는 강경입장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전의 입장으로 돌아갈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필자가 의견을 구한 전문가들 가운데 대다수는 지역 컨소시엄이 실행가능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합의로 끝난 외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점을 갖는다. 즉, 이란의 향후 의도와 관련해 어떤 추측을 하건 이란에게는 무기화한 핵무기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을 모두가 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당국은 이 점을 거듭 분명히 해왔고, 필자 역시 이와 반대되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미국은 유엔과 의회의 승인조차 받지 않은 채 아무런 도발도 하지 않은 주권국가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런 종류의 일방적 군사행동을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워싱턴의 이란 공습에 환호하기 쉽지만 만약 우리가 아닌 중국이 그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러시아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말하기도 힘들만큼 길고 복잡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주요국들 사이에서 현대 역사상 가장 긴 평화와 안정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평화 덕분에 글로벌 경제, 무역과 여행 그리고 민족주의적 경쟁이 핵전쟁으로 끝나지 않는 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은 비록 정당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행해졌다 하더라도 핵 비확산 강화로 이어진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는 선을 넘으려는 세력에 대한 경고다. 그러나 핵 비확산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선 양측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방식으로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그저 단순한 휴전뿐이다.

일방적인 미국의 군사공격은 수면위로 떠오른 국제사회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고, 다른 강대국들 역시 그들이 믿는 타당하고 긴급한 이유를 들어 규칙을 깨뜨리려 들 수 있다. 그리곤 베트남전 당시 불타는 폐허 한가운데 서서 “마을을 구하기 위해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던 병사의 말을 되뇌이며 늘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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