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춘추] ‘서울의 소리’와 디아스포라의 숨결

2025-06-20 (금) 12:00:00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ㆍYASMA7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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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일부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LA 필하모닉의 ‘서울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이 기획 연주 시리즈는 단순히 한인 연주자나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문화적 확장을 예술로 탐색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디아스포라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면서도 정체성과 뿌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뜻한다. 이번 페스티벌은 LA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한국계 예술가들을 통해 한국 음악의 오늘을 조명하고자 했다.

축제의 총감독은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이었다. 본인의 작품뿐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와 예술 세계가 스며든 여러 한인 작곡가들의 유니크한 작품을 한인 연주자들과 함께 선보였다. 공연에 앞서 디즈니홀의 BP홀에서는 서울의 모습을 담은 시퀀스 영상이 상영됐다. 고궁과 도시, 국악과 클럽 DJ의 비트가 교차하며, 서울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정서를 응축해 보여주었다. 전통과 첨단,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통해, 이번 페스티벌은 한국의 음악에 대한 소개를 넘어 오늘날 한국과 디아스포라의 복합적 정체성을 전하고자 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서울 페스티벌은 단순한 클래식 음악 축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LA필의 ‘그린 엄브렐라(Green Umbrella)’ 시리즈는 새로운 음악의 발굴과 실험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로, 이번 무대 역시 동시대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교향악단의 하나인 LA필의 이러한 문화 포용적 기획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일부 아쉬움도 남았다. 디즈니홀 로비에서 펼쳐진 퍼포먼스와 영상 상영은 인상적이었지만, 현장의 안내가 부족해 많은 관객이 그 취지를 충분히 알기 어려웠다는 느낌이었다. 또한 공연이 펼쳐진 디즈니홀 무대 위에 초록색 우산들이 배경으로 장식되었는데, 이는 ‘그린 엄브렐라’ 시리즈라는 프로젝트 명칭에 따른 상징적 콘셉트였겠지만, 일본 문화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겹쳐 보여서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인식이 다소 단편적으로 수용될 여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서울 축제’는 한국 문화의 복합성과 예술의 외연을 넓히려는 귀중한 시도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또 한편으로, 클래식 음악, 특히 현대음악의 대중화라는 오랜 과제도 다시금 실감했다. 음악은 작곡가의 지식 과시나 형식 실험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물론 현대음악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건 나의 무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무지한 청중과도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 가능한 이야기를 ‘소리’라는 언어로 전할 때, 언어나 문화가 달라도 그 감동이 전해진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첼리스트 한재민의 빨간 양말은 그런 변화를 상징하는 듯했다. 과하지 않게 전통을 살짝 비튼 유쾌한 무대 의상은 그의 열정적인 연주와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 무대는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호흡하고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무엇보다 음악이 지나치게 실험적으로 흐르면 청중과의 간극이 커질 수 있다. 끝없는 음의 반복, 주제가 모호한 전개, 과도한 전위적 주법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팔꿈치로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이걸 악보엔 어떻게 표기할까?’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물론 작곡가의 표현 자유는 고정 관념을 깨는 시도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특별한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 음악은 본질적으로 듣기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었던 것은, 그런 우려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완성도 높은 무대가 서울 페스티벌 내내 매 회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LA필이 위촉하고 초연한 한인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뛰어난 상상력과 예술성을 보여주었고, 열정적인 연주자들의 무대 역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록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들의 도전과 성취는 오래도록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한인 음악가들은 대중성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의 본질을 향해 탐색을 멈추지 않으며 세계 무대에서 더욱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무대가 더 세심한 기획과 충실한 안내로 이어져,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이 더 많은 관객과 호흡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ㆍYASMA7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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