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시대 어디로 가나 - 전문가 인터뷰
▶ ‘정체성의 정치’ 심화… 분열과 갈등도 커져
▶ 반 이민 정책은 미국 국가 경쟁력에도 손해
▶ 한인·아시안 차세대들, 주류와 ‘윈-윈’ 전략
▶ 장기적 안목으로 안정·영향력 증대 도모해야
![[창간 56주년 특집] “트럼피즘, 백인 중심 보수화… 민주적 규범·가치 훼손” [창간 56주년 특집] “트럼피즘, 백인 중심 보수화… 민주적 규범·가치 훼손”](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06/08/20250608184938681.jpg)
스탠포드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APARC) 소장 신기욱 교수는 트럼프 2기가 가져온 도전이 한인사회와 차세대에게 비판적 사고, 다문화 감수성, 사회참여를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탠포드대 제공]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센터 소장 신기욱 교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미국 사회의 기류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해온 정책들이 축소되고, 반 이민 정서와 경제정책이 한인 등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며 정체성 갈등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재미 한인 석학인 스탠포드 대학교 신기욱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트럼피즘’의 배경과 의미 및 트럼프 2기 정책들이 가져오는 변화를 분석하고, 특히 이러한 흐름이 미주 한인들과 아시아계에게 미치는 파장을 진단한다. <노세희 기자>
-트럼프 2기 출범이 미국 사회 전반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는가?▲6개월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도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큰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특히 다양성, 포용성, 성소수자 및 이민자의 권리, 표현의 자유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정책적 전환과 정치적 공세는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반감에 기초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불법적인 차별’로 간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이에 따라 연방 정부 내 DEI 프로그램은 전면 폐지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법조계와 고등교육 기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주요 대형 로펌들은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종료하고, 반유대주의 시위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주요 대학들도 유사한 협약을 맺을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국립보건원 (NIH)을 비롯한 연방기금의 경우도 DEI와 관련된 연구를 ‘좌파적 의제’로 간주하고, 해당 분야의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이같은 변화는 백인 중심의 보수화를 촉진할 것이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아 DEI를 둘러싼 ‘정체성의 정치’가 심화되며 미국사회의 분열과 갈등도 커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과 미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이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은 무엇인가?▲반 이민 정책은 트럼프 2기의 핵심공약으로 불법 체류자들 뿐만 아니라 합법적 이민자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 중 한 명이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우려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반이민 정서와 정책은 해외로부터의 우수한 인재영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학생들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 중지 등 비우호적인 정책으로 좋은 인재를 놓칠 우려가 크다. 우수한 이민자들이 미국의 사회와 경제에 공헌한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 정책은 미국의 국가 경쟁력에도 손해가 될 것이다.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는 해외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관세를 인상함으로 소상공인들이 가격 인상이나 수익성 저하 등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소수계 기업 지원을 담당하는 소수기업 개발청(MBDA)의 운영도 대폭 축소됨으로 인해 한인 및 아시아계 기업들의 자금 조달, 계약 기회, 시장 진출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면 2017년 도입된 세금 감면 정책(TCJA)의 연장은 소기업의 세금 부담을 경감시켜, 투자와 고용 확대를 기대할 수 있으며 ‘미국 우선 투자 정책’은 우방국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으므로 한인 기업들에겐 투자 및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가 한인 등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의식을 강화할 가능성은?▲미국 우선주의의 정책 기조가 아시아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타겟이 중국인만큼 반중정서가 아시아계 전체로 흐를 가능성은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계 과학자들은 종종 미국 내에서 감시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계 전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 또한 해외개발처(USAID)의 폐지 등으로 인해 해외에서의 미국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맹국인 한국에서조차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미주 한인에게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한인 청소년이나 2세들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어떤 방식으로 정체성 및 자아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반 이민 정책과 반중 담론은 한인 2세들의 자아형성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칫 미국사회로부터 ‘완전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소위 미국 주류 문화에 더 철저히 동화하려고 민족적 배경을 최소화 하려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시아계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자긍심을 키우고, 차별에 맞서는 정치·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의 도전은 비판적 사고, 다문화 감수성, 사회참여를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해 한국계 학생들도 많이 재학하는 미국 엘리트 대학에 대한 트럼프의 압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트럼프 지지자들은 하버드를 비롯한 엘리트 대학들이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를 침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된 잘못된 교육 환경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이 처한 전례 없는 상황은 민주적 규범과 가치를 마구 훼손하고 있는 ‘트럼피즘’과 무관하지 않다. 재정적 지원을 무기로 대학과 연구자들을 길들이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글로벌 과학·기술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방법은?▲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는 않지만,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인내심과 장기적 안목으로 한인 및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안정과 영향력 증대를 도모해야 한다. 실제로 트럼프 2기의 행정명령 중 법원에서 거부되거나 아직 심사 중인 안건이 적지 않다. 백인 주류사회의 아시아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아시아계가 백인들의 밥그릇을 뺏는 것이 아니라 ‘윈-윈’한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지역 정치에 적극 참여해 정당 내 영향력 확보에도 힘을 써야 한다. 유권자 등록에서 부터 정치후원금 모금, 아시아계 로비 조직 육성도 필요할 것이다.
■ 신기욱 교수는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워싱턴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및 한국사회 전문가로, 아이오와 대학과 UCLA 교수를 거쳐 2001년 스탠포드대 교수가 됐다. 스탠포드 사회학과 윌리엄 J. 페리 현대 한국 석좌교수로, 2005년부터 스탠포드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APARC) 소장을 맡아 한국학 연구와 진흥을 이끌어 왔다. 2001년에는 한국학 프로그램을, 2024년에는 대만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사회운동, 민족주의, 민주주의, 국제관계 등을 비교·정치사회학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2023년에는 아시아의 사회·문화·정치·경제 도전을 연구하는 스탠포드 넥스트 아시아 정책 연구소(SNAPL)를 설립했다. 저서로는 ‘Korean Democracy in Crisis’, ‘The North Korean Conundrum’ 등 다수의 저·편저가 있으며, 미국과 한국에서 활발한 강연과 정책 대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