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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6주년 특집] “매일 하루의 시작… 한국일보 보는 맛에 삽니다”

2025-06-0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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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를 한국일보와 함께… 장기 애독자 인터뷰

[창간 56주년 특집] “매일 하루의 시작… 한국일보 보는 맛에 삽니다”

54년 장기구독자인 조부상·박정규 부부는 한국일보가 미국 이민생활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환동 기자]

“54년을 한결같이… 효자같아”


▶ LA 조부상·박정규 부부
▶ 1971년부터 54년 ‘애독’
▶ 유익한 정보·이민생활 도움
▶ 매일 일어나면 신문부터


“한국일보가 없었다면 반세기가 넘는 이민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동갑내기 조부상·박정규(83)씨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 한국일보를 픽업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요즘 많은 본보 애독자들이 전자신문을 구독하기도 하지만 조씨 부부는 종이 신문을 손에 쥐어야 신문을 보는 느낌이 난다고 한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조씨는 남성고등학교와 고려대 상대(62학번)를 졸업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한국에 두고 주재원으로 1970년 9월 홀로 도미했다. 그리고 2년 후 충남 대전이 고향인 부인 박정규씨가 2년 후인 1972년 미국에 합류했다. 조씨는 한국일보를 1971년부터 애독하고 있으니 올해로 54년째 본보를 구독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장기 독자 중 한명이다.

조씨가 근무했던 한국 본사가 3년 후 미국 사업을 정리하면서 조씨는 본격적으로 한국일보가 미국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정보지 역할을 하는지 실감했다고 한다. 조씨는 이후 수년간 정유소에서 일하기도 하고 페인팅 일을 하기도 했지만 2006년 은퇴할 때까지 마켓과 리커 스토어를 30년 넘게 운영했다. 베니스 비치에서 마켓을 8년간 운영했고 이후 토랜스에서 24년간 리커 스토어를 운영했다.

조씨는 정유소와 페인팅 구직, 또 리커와 마켓을 구입할 때도 한국일보 광고를 통해 관련 정보와 연락처 등을 얻을 수 있는 등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며 “한국일보가 나의 이민 길잡이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고 기억한다.

모든 한인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씨 부부의 이민생활도 보람이 있었고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지만 힘들고 고된 생활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씨는 “30여년 리커와 마켓을 운영하면서 권총 강도를 5번이나 당했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며 “한번은 강도에게 총으로 머리를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매일 아침 펼쳐지는 한국일보를 통해 한인 사회의 흐름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다”고 말했다. 부인 박씨는 “한국일보는 활자가 눈에 딱 들어오고 편집도 깔끔하며 기사 구성들이 다양하게 잘 배치돼 있다”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관심 있는 기사들이 너무 많아 좋다”고 말했다.

조씨 부부는 “한국일보는 그 어떤 효자와 효녀 부럽지 않게 미국 생활 내내 우리와 함께 있었다”며 “미주 한인사회가 존재하는 한 한국일보가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고 한국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환동 기자>
[창간 56주년 특집] “매일 하루의 시작… 한국일보 보는 맛에 삽니다”

43년 간 하루도 빼지 않고 본보를 장기구독해 온 설태구씨가 세리토스 공원에서 본보를 읽고 있다. [문태기 기자]

“한국일보, 이민생활 최고 길잡이”


▶ 세리토스 거주 설태구씨
▶ 43년째 빼지 않고 장기구독
▶ 4.29 폭동 피해 악몽 딛고
▶ 본보 통해 재기 발판 마련


세리토스에 거주하는 설태구(77)씨는 43년째 미주 한국일보를 구독하면서 이민 생활에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고 한다. 가구점을 운영하다가 은퇴한 설씨는 본보의 기사와 사설, 칼럼을 정독하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인생의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돈도 벌었고, 자녀들을 위트니 고교와 UC버클리를 졸업 시키면서 마라톤 연습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본보를 통해서 기쁨과 안타까움을 함께한 설씨는 4.29 LA 폭동 피해자로, 그 당시 연 4%의 금리로 융자해 준다는 기사를 보고 저금리 융자를 해서 비즈니스를 살리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한다. 4.29 폭등을 겪으면서 이민 생활의 심한 좌절을 처음으로 맛보았지만 한국일보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다.

설씨는 또 이민 생활이 힘겨울 때 마다 본보 칼럼과 사설을 정독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인생의 역경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서 가구 사업을 성공시키면서 비교적 성공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설씨는 4.29 당시 폭도들로 인해서 한인 비즈니스들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가장 슬프고 뼈아팠다고 회고했다. 설씨는 “이민 생활을 하면서 한국일보와 줄곧 함께 해왔지만 폭동으로 인한 한인들의 피해 상황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다”며 “그래도 한국일보가 있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기사를 통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건강 면에서부터 교육면에 이르기까지 매일 빠짐없이 신문을 읽고 있다고 덧붙였다.

본보에서 주최하는 ‘거북이 마라톤 대회’, ‘오렌지 가요제’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해온 그는 오렌지카운티 축제에서 본보에서 주관한 ‘제1회 오렌지 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평소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주위의 권유를 받고 출전했지만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는 “한국일보와 함께한 즐거움도 많이 있지만 오렌지 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은 것은 가장 즐거웠던 기억 중의 하나”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지난 1982년 이민 온 설태구씨는 1993년 ‘세리토스 한인 축구회’ 회장을 맡아서 활약했으며, 약 30년간 축구로 건강관리를 해오고 있다. 한인 축구인들과 마라톤 참가자들은 설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잘 알려져 있다.

설씨는 현재는 ‘이지러너스 마라톤 동호회’ 응원단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지러너스 마라톤 동호회는 매년 새해 초 열리는 본보 주최 건강걷기대회인 ‘거북이 마라톤’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마라톤 건강 전도사와 에어로빅 지도자로 취미생활 하고 있다.

<문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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