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부 ‘유럽 언론자유 후퇴’ 조사부서 신설 추진…서방 동맹들 ‘아연실색’
▶ 국무부 연례 인권보고서 발표 지연… “정권 출범 뒤 기존 작성분 대폭 수정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서유럽의 전통적인 동맹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공격해 우방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1일 보도했다.
국내·외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정부가 인권탄압 국가들의 행태에는 눈을 감은 채 오히려 오랜 가치를 공유해온 민주 진영 동맹국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을 대변하는 사례가 바로 국무부가 신설하려는 부서인 '자연권국'(Office of Natural Rights)이다.
WP에 따르면 국무부는 최근 의회에 "핵심 자유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개념과 시민 자유에 대한 국무부의 낙관적 비전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연권국'을 설치하겠다고 통보했다.
국무부는 이 부서의 우선순위 중 하나는 "유럽 및 기타 선진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의회에 통보한 메모에 적시했다.
이를 위해 국무부는 지난 27일 유럽 국가들의 언론과 정치 환경 조사를 위한 실무자급 외교관들을 현지에 파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임무 중에는 프랑스의 대표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이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공직 출마가 제한된 것에 대해 프랑스 측에 집중 질의하는 일도 포함됐다고 한다.
국무부 당국자는 이런 임무를 두고 "표현의 자유와 정치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의 표출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르펜이 처한 정치적 곤경을 "마녀 사냥"이라고 비난하면서 르펜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는 지난달 3일 트루스소셜에선 "르펜에 대한 마녀사냥은 유럽의 좌파가 법을 이용해 언론의 자유를 침묵시키고 정치적 반대파를 검열한 또 다른 사례"라면서 "이번엔 반대파를 감옥에 가두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비난했다.
국무부가 외교와 국제정치 무대의 보편적 개념인 '인권'이 아닌 '자연권'을 고 나온 것은 트럼프 1기 정부 국무부가 '빼앗을 수 없는 권리 위원회'(The commission on Unalienable Rights)를 신설했던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국무부의 방침을 두고 인권단체 사이에서는 전통적인 인권 개념을 도외시하면서 여성이나 성 소수자 등에 대한 인권 보호를 막는 쪽으로 위원회 활동이 흐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거세게 일었다.
자연권국 신설 추진과 더불어 매년 4월쯤 나오는 국무부의 연례 인권 보고서가 늦어지는 것도 트럼프 정부의 '독재국가 세탁'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P는 국무부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거나 심각한 부패에 연루된 국가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는 등의 이미 작성된 부분에 대한 수정작업 때문에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또 WP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월 출범한 뒤 2월 국무부 관리들은 사람들을 고문과 탄압에 직면할 수 있는 곳으로 추방한 국가 등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국무부는 연례 인권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의 미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지만 비민주적인 정치체제로 비판받는 나라들에도 쓴소리를 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중동순방 당시 사우디에서 열린 한 회견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훈수 두는 것'을 그만하겠다고 밝혀 인권 보고서 내용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조만간 발표될 연례 인권 보고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새뮤얼 샘슨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 수석고문도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샘슨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 국무부의 방향성을 대변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통한다.
그는 최근 발표한 글에서 유럽이 디지털 검열과 대량 이민, 종교자유 규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의 온상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또 트럼프 정부와 주요 사안에서 엇박자를 내는 영국과 독일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헝가리가 인권을 탄압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부당하게 낙인찍힌 기독교 국가'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국무부의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민주·인권·노동 담당 차관보를 지낸 마이클 포스너는 "미국은 우리의 이익뿐 아니라 핵심 가치도 전파한다는 개념을 본질적으로 포기해버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