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테크 갑질방지법’ 첫 제재…연매출 0.1%로 상한보다는 크게 낮아
▶ 애플 불복 소송 방침…메타도 “美기업만 제약, 中·유럽과 차별” 비판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빅테크 애플과 메타가 일명 '갑질방지법'을 위반했다며 총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법적 과징금 상한보다는 크게 낮은 수준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EU의 빅테크 규제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애플에 5억 유로(약 8천133억원), 메타에 2억 유로(약 3천25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조사 결과 드러난 위반 사항을 60일 이내에 시정하라고 명령했다. 미이행 시 별도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집행위는 애플의 자체 규정인 '외부 결제 유도 금지'(anti-steering) 조항이 DMA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앱 개발자는 누구나 애플 앱스토어보다 저렴한 앱 구매 옵션이 있다면 고객에게 이를 알리고 앱스토어에서 다른 외부 결제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애플이 이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추가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이날 종료된 조사와 별개로 집행위가 애플의 일명 '핵심 기술 수수료' 제도 역시 DMA 위반에 해당한다는 예비 결론을 내린 탓이다.
예비 결론에 따르면 집행위는 애플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유통 채널에서 앱을 배포하려는 외부 앱 개발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해 '대체 채널' 활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예비 결론에 대한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새로운 과징금과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집행위는 메타에 대해서는 2023년 11월 도입한 '비용지불 또는 정보수집 동의'(pay or consent) 모델을 문제 삼았다.
메타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유료 이용자에만 광고를 목적으로 한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고, 무료 이용자엔 데이터 수집에 사실상 강제로 동의하도록 함으로써 DMA를 위반했다고 집행위는 판단했다.
메타는 집행위 조사가 개시된 이후인 작년 11월에는 이용자가 최근 2시간 이내에 본 콘텐츠와 최소한의 개인 정보만을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일명 '덜 개인화된'(less personalized) 광고 서비스 옵션을 추가 도입했다.
집행위는 이날 과징금 부과 결정과 별개로 이 옵션이 DMA 규정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가로 평가 중이라고 설명했다.
애플과 메타는 즉각 반발했다.
애플 대변인은 "집행위가 불공정하게 애플을 겨냥하는 또다른 사례"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메타도 "성공적인 미국 기업에 제약을 가하면서 중국과 유럽 기업들은 다른 기준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허용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이날 과징금 부과 결정은 작년 3월 DMA 전면 시행 이후 첫 제재다.
'빅테크 갑질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DMA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애플·메타 등 7개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 특별 규제하는 법이다. 이들 7개 중 5개 기업의 본사가 미국에 있다.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고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고 법을 반복적으로 어겼다고 판단되면 과징금이 최고 20%까지 올라간다.
다만 이날 애플과 메타에 대한 과징금은 각각 연매출의 약 0.1% 수준으로, DMA 과징금 상한인 '연매출 10%'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집행위는 DMA가 신생 법이며, 두 회사의 위반 기간이 길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징금 액수가 예상보다 적은 데다 조사 결과 발표가 여러 차례 지연되면서 '미국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중요 사건은 담당 집행위원이 직접 발표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 사건을 총괄한 테레사 리베라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
이번 결정이 대미 관세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DMA를 비롯한 EU의 디지털 규제의 타깃이 미국 빅테크이고 과징금 역시 '과세'에 해당한다고 여러 차례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EU의 DMA를 '무역장벽'의 하나로 거론했다.
이에 대해 집행위 고위 당국자는 "관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늘 결정은 독립적 결정이며 오롯이 DMA 집행에 관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