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서 회담 “추방 이민자 못 보낸다”
▶ “시민권자도 중범죄면 추방” 위헌 논란
▶ NYT “미, 부켈레 인권 침해 묵인” 비판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14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행하고 있는 대규모 이민자 추방 정책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파트너’가 등장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법원 판결도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다.
AP통신에 따르면 14일 백악관을 방문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에서 부당하게 추방된 한 이민자의 귀환 문제에 대해 “터무니없는 질문”이라 일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수로’ 추방한 남성을 미국 법원은 귀환시키라고 명령했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날 부켈레 대통령은 기자들을 향해 “어떻게 테러리스트를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라는 말이냐.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옆에 앉아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미소를 보였다.
부켈레 대통령이 말하는 ‘테러리스트’는 지난달 미국이 추방해 현재 엘살바도르 교도소에 갇혀 있는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의미한다. 가르시아는 2011년 엘살바도르에서 위협과 폭력을 피해 미국에 입국했고, 이후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정부는 근거 없이 그를 추방했고, 법원이 송환 명령을 내리자 추방 조치가 ‘명백한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그가 테러리스트이거나 갱단 일원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가르시아에 대한 추방 권리는 엘살바도르에 있다”며 “아무리 연방 판사라도 다른 나라 시민을 강제로 데려오도록 강요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미국과 엘살바도르가 서로 가르시아를 집으로 보낼 “권한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해 법원 명령을 뭉개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추진하는 데 부켈레 대통령이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국 가디언은 “월요일의 발표는 사실상 무언극이었다”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 수법을 보여주는데, 먼저 신속하게 움직인 뒤 법원이 위법 행위에 대해 반응하면 피해를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회피하고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원 명령을 거부하고 적법 절차 없이 사람들을 추방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폭력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미국 시민을 엘살바도르 교도소로 보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자리에서 “범죄를 지은 미국 시민들을 엘 살바도르 감옥으로 추방하고 싶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주 부켈레 대통령이 미국인 죄수들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히자 “(일부 미국인을 엘살바도르로 추방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발언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부켈레 대통령에게 “교도소를 5개 더 지으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위헌 소지가 커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독재자”라 일컫는 부켈레 대통령은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 열심히 보조를 맞춰주고 있다. 3월 이후에만 미국에서 200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이민자를 받아들여 악명 높은 교도소에 수감했고, 그 대가로 미국에서 600만 달러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내부적으로는 갱단을 소탕하겠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민 8만5,000여 명을 재판 없이 체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NYT는 “부켈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국 교도소 문을 열어주면서 세계 무대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진단했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퍼스트 관계자는 NYT에 “미국은 부켈레 정부의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신 그들의 권위주의적 수법에 동조하고 이를 모방하고 있다”며 “증거 없이 사람을 잡아들이고, 적법 절차를 거부하고, 비인권적 교도소에 무기한으로 가두는 행위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