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추사유 5개 모두 “중대 위법”
▶ 계엄 선포 절차·실체적 요건 위반
▶ 윤 ‘질서 유지’ 주장 “믿기 어려워”
▶ 선관위 불법 압색 “독립성 침해” 정치·법조인 등 체포 지시도 인정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
헌법재판소가 4일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결정적 이유는 ‘중대한 법 위반’을 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하는데, ‘12·3 불법계엄’ 과정에서 드러난 윤석열 전 대통령 행위는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이날 ▲12·3 비상계엄 선포 ▲포고령 1호 발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정치인, 법조인 체포 등 탄핵소추사유 5가지 모두를 중대한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했다.
①계엄의 절차적·실체적 요건 위반
헌재는 12·3 비상계엄이 계엄의 절차적, 실체적 요건을 위반했다고 봤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해야 한다. 이에 윤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 폭주 ▲예산 무차별 삭감 ▲탄핵소추 남발 등으로 입법 및 행정 업무가 마비되고, ▲부정선거 의혹 ▲하이브리드전으로 국가비상사태가 초래됐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헌법에 따라 계엄 선포권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일정 정도 판단 재량이 인정된다”면서도 “객관적 위기상황이 아님에도 주관적 확신만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야당의 횡포에 대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윤 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도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비상계엄의 본질은 중대한 위기 상황을 병력으로 극복하는 것인 만큼,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절차적 요건인 국무회의 심의절차도 위반했다고 봤다. 계엄 선포 전 회의에 국무위원들이 모이긴 했으나, 회의가 단 5분 만에 끝나 계엄 선포에 대한 심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무총리 등 관계 국무위원이 계엄 선포 문서에 부서하지 않았으며, 계엄 선포 후 국회에 통고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국무회의 심의 등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 절차를 준수했다면, 피청구인 판단이 그릇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계엄 선포에 나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꾸짖었다.
②국회 정치 활동 금지한 ‘포고령 1호’
윤 전 대통령이 계엄 당일 공개한 ‘포고령 1호’ 또한 엄중한 헌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해당 포고령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포고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작성했다”며 “법적으로 검토하면 손댈 게 많겠지만, 계엄이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데다 포고령은 상징적일 뿐 집행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냥 뒀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도 야간통행금지 조항은 국민에게 불편을 줄 우려가 있고,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그러나 “계엄은 선포 즉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계엄 형식을 갖추기 위해 포고령을 발령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포고령이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야간통행금지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이를 삭제함으로써 나머지 조항들의 효력 발생 및 집행을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③군경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계엄 당일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권을 방해한 것 또한 중대한 위법으로 판단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질서 유지’ 목적에서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것일 뿐, 국회를 봉쇄하거나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그러나 “국가중요시설로서 평상시에도 철저한 경비가 되고 있는 국회에 대해 단순히 질서 유지만을 목적으로 본래의 경비인력 및 추가된 경력을 넘어 280여 명의 군인을 투입시켰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계엄법상 계엄 선포 시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해선 계엄사령관이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국회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헌재는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는 윤 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 지시가 없었다면 ▲계엄 당일 구체적 임무를 몰랐던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갑자기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과 국회 본회의장 인원이 150명이 넘지 않게 할 방법을 논의할 이유가 없고,▲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또한 본래 임무인 핵심시설의 ‘외곽’ 경계를 하던 중 갑자기 부하 직원에게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④군대 동원한 선관위 압수수색
윤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겠다며 계엄 당일 중앙선관위에 군을 보내 전산시스템 점검을 시도했는데, 헌재는 이 또한 명백한 영장주의 위반이라고 봤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군대를 동원해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압수수색한 건 선거관리사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선거가 지니는 본래의 민주정치적 기능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라며 “선관위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고자 하는 헌법 취지에도 반한다”고 꼬집었다.
선관위 전산시스템 점검은 계엄사령관이 관장하는 행정사무 집행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윤 전 대통령 주장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선관위 사무는 원칙적으로 계엄사령관이 관장하는 행정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설령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해도 계엄 목적 달성에 반드시 필요한 한도 내에서 해당 기관 사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개별적·구체적 조치에 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⑤정치인, 법조인 등 체포
정치인, 법조인 등 체포 명단에 대해선 “피청구인이 (이들의) 체포를 (직접) 지시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필요시 체포할 목적으로 행해진 특정 사람들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가 피청구인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계엄 당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불러준 체포 명단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불러준 명단이 일치한다는 점 ▲윤 전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한 점 등을 토대로 해당 명단이 실재했음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은 홍 전 차장과의 통화를 단순한 격려 차원이었으며 간첩 수사 업무와 관련된 일반적 지시를 했다고 했지만, 헌재는 “피청구인이 계엄 선포 전 대통령실에서 조태용 국정원장을 만났고, 홍 전 차장과 통화 후 조 원장과도 통화했는데, 조 원장에게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며 “피청구인은 처음부터 홍 전 차장에게 계엄 상황에서 방첩사에 부여된 임무와 관련된 특별한 용건(체포)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정치인, 법관 체포 지시가 정당 활동의 자유 및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그리고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고 결론 내렸다.
헌법 수호 책무 저버려 “파면 정당”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려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게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 상실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가 두 가지 파면 사유에 모두 해당한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해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함으로써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에 해당한다”며 파면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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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