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 우크라전 종전 위해 러 접근…80년 유럽과 안보동맹 균열
▶ 태평양선 日·필리핀·호주 등과 협력 강화…美국방 “이들과 억제력 구축”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로이터]
세계정세가 격변하면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지했던 유럽과의 '대서양 동맹'은 느슨해지고, 중국 주변국과 미국 간 '태평양 동맹'이 공고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해 러시아에 다가서며 대서양 동맹을 흔들고 있지만, 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촘촘한 대중국 포위망 구축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일본, 필리핀, 호주, 대만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의 패권주의적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28일 필리핀 국방부 장관과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필리핀, 일본, 호주, 한국 등과 전쟁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억제력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 미일동맹이 안보 기축…필리핀·호주와도 협력 심화 모색
미일 동맹을 외교·안보 정책의 기축으로 삼는 일본은 중국의 대만 침공 등에 대비해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주변국과 안보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양자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필리핀,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등 다자 협력 체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2022년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계기로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보유 등을 위해 방위비(방위 예산)를 매년 큰 폭으로 증액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방위비를 더 올리라는 미국 압박을 염두에 두고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 이후 방위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가 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2022년 방위비는 GDP 1% 수준이었다.
아울러 일본은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을 통해 자위대가 보유한 지대공 미사일 패트리엇을 미국에 수출했고, 자위대와 미군 간 지휘통제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내달 하순 시작되는 연휴 기간에 필리핀을 방문해 방위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미·일·필리핀 연계 필요성을 재확인할 방침이다.
아울러 일본은 오커스가 지난해 10월 호주에서 실시한 해상 합동훈련에 참가하는 등 오커스에도 다가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일각에서는 오커스에 일본(Japan)이 추가될 경우 '조커스'(JAUKUS)가 될 것이라는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방위장비 수출을 추진하는 일본은 호주의 호위함 도입 계획에 대응해 최신예 함정을 호주에 파견하며 안보 협력 고리를 확대해 가고 있다.
◇ '대중 포위망 선봉' 필리핀…트럼프 행정부도 추가 군사 지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는 필리핀은 현재 가장 강경한 반(反)중국 정책을 펼치는 국가로 꼽힌다.
2022년 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전임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밀착하면서 미국이 그리는 인도·태평양 대중국 포위망의 선봉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다만 세계 대다수 동맹국과 충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미국과 필리핀의 '철통같은' 동맹 관계도 흔들릴지 주목됐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트럼프 행정부도 중국 견제를 위해 필리핀과 동맹에는 힘을 싣는 듯한 양상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각종 대외 원조 자금 지출을 90일간 동결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도 필리핀 군 현대화 지원 예산 3억3천600만 달러(약 5천억원)는 동결 대상에서 제외했다.
헤그세스 장관도 지난 28일 필리핀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필리핀 군 현대화를 위해 약속했던 총 5억 달러(약 7천400억원)에 이어 추가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4월 필리핀에 처음 배치한 최신 중거리 미사일 체계 '타이폰'을 추가 배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대함 미사일 시스템인 '해군·해병대 원정 선박 차단 체계'(NMESIS·네메시스)와 고성능 무인 수상함 등을 포함한 추가 군사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필리핀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일본·호주·필리핀 4개국의 비공식적 안보 협의체 '스쿼드'(Squad)에 한국과 인도를 가입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 호주, 핵잠수함 도입 추진…中압박에 미국산 무기 인도 서둘러
5개국 정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와 오커스에 모두 속한 호주는 미국의 대중 포위 동맹 핵심국이다.
호주는 오커스를 통해 미국·영국과 협력해 핵심 해상 전력인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하기로 하는 등 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군함이 이례적으로 호주 주변 바다까지 진출해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중국 군사력의 압박이 거세지자 장거리 대함 미사일 등 이를 견제할 전력을 미국에서 조달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호주는 최근 미국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첫 인도분 2대를 받았고, 여기에 탑재할 미국산 프리즘(PrSM·Precision Strike Missile) 미사일도 올해 받기로 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한 오커스에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일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백악관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오커스를 논의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해당 기자가 영국·호주와의 안보 동맹을 말한다고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걸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 中 '2027년 침공' 대비하는 대만…미국과 안보 협력 추진
대만은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국방 예산을 GDP 대비 2.5% 수준에서 3%로 늘리기로 했다.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특별예산을 편성해 국방예산을 3% 이상 목표에 이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면서 "미국 등 민주 국가와 협력도 강화해 지역 안정과 번영을 공동으로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지난 20일 밝혔다.
구리슝 대만 국방부장(장관)은 이달 3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핵심 국가 이익의 일부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대만은 올해 처음으로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국방부는 올해 7월 진행하는 연례 군사훈련 '한광훈련'의 기간도 두 배로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능력을 갖추라고 명령했다는 미국 정보 당국 등의 분석에 따른 대응이다.
대만 당국은 전시 등에 대비해 대체복무역 전역자에 대한 훈련 소집 연한과 횟수, 일수 등에 대한 제한을 없애도록 관련 규정을 지난 17일 개정했다.
아울러 병력 부족에 대응해 여성의 의무복무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