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프 안의 오세아니아 여행기 4

2025-03-07 (금) 06: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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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은 신발 바닥에 흙만 묻혀 들어와도 고맙다”

제프 안의  오세아니아  여행기 4

화물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목재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장사를 잘하고 못하고는 개인의 능력과 실력의 차이다. 크루즈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미국에서는 점차적으로 개인적 서비스는 소멸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미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하기 위해서 디시 그로서리에 취직했을 때 저녁 문 닫을 시간이면 흑인 손님들이 몰려온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하다가 꼭 문 닫을 시간이면 몰려와서 맥주와 와인을 사 가는지 이해가 안 갔고, 퇴근을 칼같이 해야 하는 젊은 나는 눈치 없이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면 꼭 또 다른 손님이 가게 문을 두드린다. 주인아줌마가 살짝 문을 열고 주문받은 물건들을 전해주기를 서너 번 하면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퇴근이 10분 이상 늦어지기 일쑤였다. 그때는 그 시간이 참 긴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저녁 주정뱅이들을 상대하면서도 열심히 사시던 주인분들을 바라보며 젊었던 나에게 들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세 가지 마음이 들 수 있다. 1) 나는 나이 들어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젊은이들 어른들에게 드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나이가 되면 똑같이 행동한다) 다른 직장을 찾자. 2) 장사 참 힘들게 하네. 월급 올려달라고 해야지. 3) 찾아온 손님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나도 저렇게 해야지.


<장사는 체험이 중요하다>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은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지워싱턴 대학 선배님이신 이수동 회장님이 핵심을 찌르는 말씀을 해주셨다. “모든 contract은 contact이 시작이다.” R만 빼면 똑같은 글자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 종일 손님들에게 “탱큐”했던 여주인님은 문 닫을 시간 때만큼은 막차 손님들에게서 “프리스”와 “탱큐” 소리를 들으면서 장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서 장사의 기본인 “serve until the last customer”을 배웠다.


<중국식당 주인 토니 챙이 들려준 이야기>
물론 그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 그래서 40년이 지난 오늘도 그분들을 형님, 형수님 하며 모신다. DC 차이나타운에는 Tony Cheng 식당이 오랜 세월 유명 식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젊은 식당 주인이었던 토니는 손님들을 직접 마중하며 극진히 대접했다. 식사를 하다 보면 핫앤사워 수프 하나 시켜놓고 갑질 하는 손님도 있다. 내가 경찰 불러서 쫓아내라고 하자 그는 “손님은 신발 바닥에 흙만 묻혀 들여와도 고맙다”라며 중국 속담을 들려주었다. 한 손님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살던 선배님이나, 어느 손님이나 차별 안 하며 장사하던 식당 주인 토니 모두 훗날 내 자신이 장사를 할 때 뒤돌아보며 내 자신에게 채찍질할 교훈을 주셨던 분들이다.


<쿠폰 들고 온 손님을 박대했던 미국 매니저>
크루즈 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종업원들을 보니 옛일이 떠올랐다. 날짜 지난 종이 쿠폰을 들고 온 손님을 박대하던 백인 매니저가 생각난다. 매일 새벽 프로듀스 섹션에서 야채와 과일들을 모두 들어내서 바닥을 정성껏 닦아낸 후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 올리던 매니저는 원칙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밑에 일하는 종업원들은 힘들었다.
어느 날 나이 든 단골손님이 물건을 한바구니 사면서 쿠폰을 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날짜가 지났다. 지금은 사라진 종이 쿠폰은 그 당시 아줌마 필수품이었다. 쿠폰 제대로 모으지 않는 주부는 주부 축에도 못 끼던 시절, 그런데 그 단골손님을 매정하게 자르며 원칙을 내세웠다. 물론 손님은 물건 모두 그대로 놓고 나갔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프 안의  오세아니아  여행기 4

뉴질랜드 port chamber에서 컨테이너와 목재들이 정리되고 있다.



<비싼 만큼 아쉬움도 큰 크루즈 여행>
지금 한 명당 1만불 하는 크루즈 여행 중이다. 아래층은 4천 불부터 시작해서 맨 윗층 ‘주인방(Owner’s Suite)’은 똑같은 곳을 여행하면서 2만5천불이다.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방이 커질수록 비싸지는 크루즈 여행을 하다 보면 자본주의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똑같이 태어난다고 하지만, 인생에서 몇 평짜리에 사느냐가 성공의 잣대가 되기도 하고 죽어서마저도 납골당에 묻히느냐, 널찍한 명당자리에 묻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와이프에게 미리 큼직한 묘소를 마련하자고 하니 너무 과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미국에서 제일 안 망하는 사업이 장례사업이라고 한다. 참 좋은 사업인 것만큼은 맞다. 그럼에도 왜 한인들이 운영하는 장례 묘지 사업장은 없을까? 투자비용과 허가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큰 여객선보다 작은 여객선일수록 비싼 것도 재미있다. 또한 비싼 여행일수록 가성비를 생각한다.

제프 안의  오세아니아  여행기 4

크루즈.



<정서적 소외감이 밀려온 크루즈 여행>
아무리 좋은 크루즈에서도 아쉬운 점은 한인이나 중국주인이 보여주었던 정서적 감성과 손님을 대하는 귀중함이 결여되어 감을 느낀다. 선상 안에 갇혀 있는 고객들에게 식당이나 상점들은 무척 중요한 장소다. 그럼에도 단 일분도 일찍 열거나 늦게 닫지 않고 손님들이 줄서 기다리는데도 종업원들이 안에서 멀뚱멀뚱 시계를 쳐다보며 문을 안 열어준다.

상점에 들어서서 물건 값을 보면 너무 비싼 가격에 놀란다. 오래전 쿠폰 날짜 지났다고 박대하던 매니저처럼 단 한 치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모습이다. 여기저기에서 매출, 이문, 차익만 남기려는 장삿술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느꼈던 정감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라고만 외친다면 인간 사회는 황폐해질 것 같다. 이러한 내 마음을 반영하는 듯 뉴질랜드 제머 항구에는 엄청난 양의 목재들이 배에 실리고 있었다. 모두 중국, 한국 등으로 실려 가는 목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인간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목재들 마냥 유람선에 싸여있다. 비즈니스의 본질인 인간관계는 도태되어 감을 느낀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뉴질랜드,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글·사진: 제프 안, 조지워싱턴대 한인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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