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분서주 76세 英국왕…트럼프시대 찰스3세 외교 주목

2025-03-06 (목) 09: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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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국빈초청 후 젤렌스키·트뤼도 만남…英해군 항모 승선까지

▶ “미묘하고 의도적 행보”… “트럼프 예측불가, 신중해야”

'트럼프 발' 격랑 속에 찰스 3세(76) 영국 국왕이 조용하면서도 활발한 외교 행보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9월 영국 역사상 최고령(73세) 국왕으로 즉위한 찰스 3세는 그간 형식적인 국가원수로서 사회 통합을 지원하는 관례적 활동을 펼쳤으나 최근 1주일간 뉴스에 이름이 연이어 오르내렸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찰스 3세의 친필 서명이 담긴 버킹엄궁 초청장을 내밀면서 '역사적인 국빈 방문'을 요청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찰스 3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부르며 수락했다.


바로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회담이 파행되자 찰스 3세는 2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자신의 샌드링엄 영지로 초청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며 환대했다.

3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미국과 통상마찰을 직접 겪는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맞이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후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리는 캐나다의 주권과 독립적인 미래 등 캐나다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대화했다"고 적었다.

버킹엄궁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 함구했지만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인 영연방의 일원 캐나다의 주권에 대한 찰스 3세의 지지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평가된다.

4일 찰스 3세는 헬기로 영국 해협으로 이동, 해군 항공모함 HMS프린스오브웨일스호에서 승조원들을 격려하고 전투기 이륙을 참관했다. 영국 해군에 따르면 국왕이 해상 작전 중인 군함을 방문한 것은 거의 40년 만에 처음이다.

이 항모는 전 세계를 거쳐 일본으로 향하는 8개월간의 항해를 앞두고 있다. 영국이 우크라이나 전후 평화유지군 파병을 약속한 가운데 국제 방위에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영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해군 기함에 국왕이 오른 것이다.

영국 국왕은 정치적으로 중립의 의무가 있으나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외교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찰스 3세는 행동으로 조용히 화답한 셈이다.

폴 매클래런 런던로열홀로웨이대 교수는 AFP 통신에 "다소 특이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왕실을 아주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이런 '소프트 파워'가 큰 자산이고 지금이 이것이 대단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70년이라는 긴 왕세자 시절을 보낸 찰스 3세는 어머니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정치, 사회적 참여 의지가 높고 실제로도 더 활발한 행보를 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방식은 피해 가면서도 동맹을 지지하는 외교술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왕실 소식통은 영국 언론에 "지난 며칠은 가장 미묘하고 섬세하며 의도적인 왕실 외교였다"며 "국왕은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책무를 잘 알고 있으며 열정적으로 참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왕실은 국왕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의식해 외교적 만남에서 어떤 언급을 했는지 일절 발표하지 않는데, 이것도 위기를 맞은 대서양 관계의 현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왕실 소식통은 "(국왕의 역할은) 발언하는 게 아니라 상징적인 제스처를 내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고려하면 향후 찰스 3세의 외교 행보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왕실 전문 논평가 리처드 피츠윌리엄스는 "복잡한 문제일 뿐 아니라 상황이 변하는 속도도 문제"라며 "혼란스러운 시기이므로 국왕은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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