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먹물로 일장기 덮은 굳은 의지…진관사 태극기에 깃든 독립 정신

2025-02-28 (금) 09: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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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깊숙이 숨겨져 있던 ‘보물’ 태극기…1919년 전후 제작 추정

▶ “민족의 혼 잃지 않겠다는 다짐 담겨”…독립운동가 백초월 연관성 주목 지하신문 등 기록 눈길…”항일 불교 상징 유산” 국보 승격 목소리도

먹물로 일장기 덮은 굳은 의지…진관사 태극기에 깃든 독립 정신

3·1절을 앞두고 지난달 28일(한국시간) 서울 은평구 소재 진관사에서 공개한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빛바랜 천 위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구멍이 여러 개 났고, 왼쪽 윗부분은 마치 불에 탄 듯 일부가 사라졌다.

네 모서리를 채운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 위치는 오늘날과 조금 다르다.

그러나 광목천 한가운데에 놓인 태극의 기운은 강렬했다. 청홍 태극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은 먹물을 덧칠한 태극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일장기 위에 그려 넣은 태극과 4괘.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이 깃든 역사 유산,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다.

3·1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은평구 북한산 기슭에 자리한 진관사에서 만난 주지 법해스님은 "민족의 혼, 정신은 잃지 말자는 다짐이 깃든 상징적인 태극기"라고 말했다.

진관사 태극기는 발견 당시부터 특별한 사연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진관사의 부속 건물인 칠성각을 해체하는 공사 중 내부 불단(佛壇·부처를 모셔 놓은 단)과 기둥 사이에 발견됐다.

당시 작업자가 안쪽 벽에서 보자기처럼 무언가 꽁꽁 싸맨 꾸러미를 찾아냈고, 풀어보니 가로 89㎝, 세로 70㎝ 크기의 태극기와 총 19점의 신문이 있었다.

'신대한'(新大韓), '독립신문' 등과 같은 신문을 태극기로 싸맨 모습이었다.

"오전 9시쯤이었을 거예요. 작업 현장의 연락을 봤고 꾸러미를 풀어보니 태극 모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뜨거운 눈물만 흘렀습니다." (법해스님)


오랜 기간 숨겨져 있던 태극기는 그 자체로 역사였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은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며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법해스님은 "밖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안쪽 깊숙이 숨긴 모습"이었다며 " 당시 독립운동의 핵심 세력이 아니면 손에 넣지 못할 중요한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발간된 항일 신문 '신대한'은 제2호와 3호 실물이 처음 발견돼 주목받았다. 이 신문은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가 주필로 참여했다.

3·1운동 당시 천도교 측에서 발간한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 친일파를 꾸짖고 항일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경고문' 등도 주목할 만하다.

법해스님은 특히 '독립신문'에 실린 시 한 편을 함께 기억해 달라고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발행한 '독립신문' 제30호에 실린 '태극기'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 우리 태극기를 오늘 다시 보앗네 /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그렇다면 진관사 태극기는 누가, 언제 보관했을까. 불교계와 학계에서는 독립운동가 백초월(1878∼1944) 스님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먹물로 일장기 덮은 굳은 의지…진관사 태극기에 깃든 독립 정신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 [공훈전자사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백초월 스님은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위해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나,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고 1944년 청주교도소에서 순국했다.

이런 유공을 인정받아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각각 추서됐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정보는 백초월 스님의 활동에 관해 "진관사를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 은신처, 그리고 휴식처 등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대 불교사를 연구하며 30년 가까이 백초월 스님의 행적을 조사한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는 "항일 의지를 실천하고 불교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인물"이라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법해스님은 어린 시절을 진관사에서 보낸 한 노스님을 찾아갔던 일화를 소개하며 "백초월 스님을 떠올리시며 태극기 사진을 한참 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세 번 절하셨다"고 전했다.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큰 만큼 진관사 태극기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광식 교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호국 불교, 항일 불교를 상징하는 유산"이라고 평가했으며 법해스님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 역사성을 고려하면 (진관사 태극기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시켜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진관사 태극기는 2010년 등록문화재(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로 등록됐다가 2021년 보물이 됐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태극기는 진관사 태극기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총 3점이다.

진관사 측은 3·1절을 앞두고 태극기 실물을 특별히 공개했다.
먹물로 일장기 덮은 굳은 의지…진관사 태극기에 깃든 독립 정신

28일(한국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외벽에 제106주년 3·1절을 맞아 진관사 태극기를 형상화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물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태극기와 신문 전체를 한데 모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사찰 측은 귀띔했다. 최근 국회 본관 정면에 걸린 태극기 현수막은 진관사 태극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2009년 태극기가 발견됐을 당시 진관사 주지였던 회주 계호스님은 "발견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말한 뒤, 태극기 앞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태극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나라 잃은 설움, 국력이 쇠퇴한 과거 역사가 생각나지요.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태극기의 가치와 숭고한 뜻을 알리고 싶습니다." (법해스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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