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다음달 25% 이상 관세 부과 발표할 듯…업계 셈법 복잡
▶ 반도체법 보조금도 재검토…대중국 수출 추가 규제 가능성도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2025.2.14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가 중대한 변곡점에 접어들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반도체법 보조금과 대중국 반도체 수출 추가 규제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K-반도체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23일(한국시간)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중으로 반도체에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기업들)에게 (미국에 투자하러) 들어올 시간을 주고 싶다. 그들이 미국으로 와서 여기에 공장을 세우면 관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을 통해 미국 내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반도체 제조 생산 능력을 확대하려는 취지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우 중국 현지법인으로 부품·소재·장비를 수출해 중국에서 후공정을 완료한 메모리 반도체를 재수출하는 교역 구조로 인해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의 40% 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복잡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반도체 직수출 물량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로 관세율 등이 나오면 관세 부과로 늘어나는 비용과 미국에 공장을 짓게 되는 비용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먼저 수입하는 서버, 스마트폰, PC와 같은 완제품은 관세가 바로 부과될 수 있고 현재 무관세인 반도체도 관세가 크게 부과될 수도 있다"며 "반도체에 대해 관세를 크게 부과할 경우 관련 반도체뿐 아니라 후공정(OSAT) 업체들도 미국에 제조 라인이 있어야 하며 완제품도 미국에서 조립 생산할 때 관세 이슈가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관세 부과 방침이 '인텔 살리기'를 위한 TSMC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메모리의 경우 한국 메모리 점유율이 지난해 3분기 기준 D램 75.5%, 낸드 55.8%로, 이를 고려하면 대체재가 없어 (관세 부과에) 실익이 없다"며 "인텔 회생을 위한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파운드리 시장 64.9%를 차지한 TSMC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중국시보 등 대만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과 협업하라고 TSMC를 압박하고 있으며 TSMC의 미국 내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 인텔 파운드리 출자, 인텔의 TSMC 미국 고객사 관련 패키징 주문 직접 인수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수조원대의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향후 TSMC의 인텔 인수가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TSMC는 인텔 공장을 이용해 미국 현지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기지로 활용하겠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파운드리 공급망 다변화의 현실적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김동원 연구원은 "TSMC의 독과점적 점유율을 고려하면 기존 인텔의 파운드리 고객과 TSMC 고객 기반이 대부분 중복되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 중국 SMIC의 경우 미국의 중국 제재 강화로 활용 가능성이 낮다"며 "2026년 테일러에서 파운드리 신규 생산 라인 가동을 준비 중인 삼성전자에 향후 잠재 고객 확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도체 관세 부과가 반도체법 지원 규모 재협상을 위한 일종의 협상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수습 직원 500여명을 해고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대부분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 반도체 제조를 위한 자금 등 주요 정책 시행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앞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기업들이 이미 전임 행정부와 최종 계약을 맺었더라도 자신이 반도체법 보조금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는 지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실무 담당 인력의 대량 해고까지 가시화한 셈이다.
이미 지급이 결정된 보조금이 줄어들면 기존에 세워둔 공장 가동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만큼 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건설 중인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에 오는 2030년까지 3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하고 미 상무부와 지난해 말 47억4천500만달러의 직접 보조금 지급 계약을 체결했다.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천만달러를 투자해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SK하이닉스도 최대 4억5천800만 달러의 직접 보조금 지급이 결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은 업체마다 계약 조건과 수령 방식 등이 다를 텐데 어떻게 재검토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당장 투자 축소나 일정 지연 등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약속된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영향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추가 규제 가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테크업계에 충격을 안긴 중국의 딥시크가 AI 모델 구동에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제작한 저사양 칩 H800을 사용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저사양 칩인 H2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AI 칩 수출 통제 강화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저사양 칩에 대한 수출 통제가 확대되면 여기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하는 국내 업체들의 영향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에 HBM 5세대인 HBM3E를 공급하며 이미 무게 중심을 HBM3에서 HBM3E로 옮긴 SK하이닉스보다는 H800과 H20에 탑재되는 HBM3를 공급 중인 삼성전자가 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4분기에 다수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사와 데이터센터 고객에 HBM3E 공급을 확대하며 HBM3E 매출이 HBM3 매출을 넘어섰다고 밝힌 만큼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3월 한 달이 반도체 업계에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며 "보조금 재검토든 관세든 결국 미국 측과 주고받아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협상을 풀어나가는 게 유리할지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