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춘옥의 경제 지평선 - 트럼프는 저유가를 원한다
▶ 무역전쟁 땐 성장 둔화로 이어져
▶ 실질임금 상승률 떨어질 가능성
▶ 국제유가 상승에도 영향 불가피
▶ 식탁물가 등 인플레 압력 커질듯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각종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핵심적인 정책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반이민 정책으로, 약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는 한편 해외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을 억제하는 것이다. 반이민 정책에 못지않게 강하게 추진되는 정책은 대규모 관세 부과를 통해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개선하는 한편,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두 정책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꾸준하게 추진되었지만, 2기 행정부에서는 더욱 강도 높게 그리고 지속적인 추진이 예고되는 것 같다. 그러나 반이민 및 무역전쟁이 강하게 추진될수록 미국경제의 성장 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 경제는 내수 위주의 시장으로 특히 실질임금 상승률이 성장 탄력을 결정짓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임금 상승, 개인 소비에 영향
물가 상승 속도보다 임금이 더 빠르게 오를 때 각 가정의 흑자 폭이 커질 것이다. 흑자가 늘어난 가정은 자녀에 대한 교육 투자를 늘릴 기회가 생기며, 또 휴가 때 더 좋은 숙소를 잡을 수도 있다.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는 얼마든지 늘어날 여지가 생긴다. 검소하던 가정도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더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추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반대로 2022년처럼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상황은 정반대로 간다.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하는 데 비해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각 가정의 저축이 빠르게 고갈될 것이다. 특히 물가 상승세가 억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순간, 절대적인 소비 액수마저 줄어들지도 모른다.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휴가 계획을 취소하는 한편 냉장고나 자동차 같은 내구재의 소비를 아예 중단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약간의 시차를 두고 경제는 큰 충격을 받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기간 내내 낮은 지지율에 허덕인 이유도 강력한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면서 실질적인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데, 경제성장률 지표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트럼프, 실질임금 상승률 줄이는 까닭트럼프 행정부는 왜 가계의 실질임금 상승률을 저해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일까?
물론 무역전쟁과 반이민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이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피터 나바로 전 미국 국가무역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참모진의 경력을 고려하면, 단순히 경제 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정책을 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가 생각할 때, 트럼프 행정부는 원유 가격 안정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국제유가의 변화와 미국 소비자물가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유가 변화가 물가를 좌우하는 요인임을 알 수 있다. 2022년에 유가가 치솟을 때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까지 치솟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2010년대 중반처럼, 국제유가가 급락할 때에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거의 제로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유가가 상승할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직접적인 요인은 휘발유 등 각종 에너지 제품 가격이 인상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식료품 가격 상승인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바이오 연료 보조금 제도’에 있다.
유가와 식료품 가격의 상관관계바이오 연료는 크게 에탄올과 디젤로 구분하는데, 바이오 에탄올은 옥수수 그리고 바이오 디젤은 콩기름을 원료로 만든다. 문제는 바이오 디젤이나 바이오 에탄올에 사용되는 곡물의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미국 옥수수 생산 중 약 35% 이상이, 그리고 콩 생산량 중에서 40% 이상이 바이오 연료로 사용 중일 정도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 전환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콩이나 옥수수로 얻어진 바이오 연료의 효율이 높지 않고, 또 작물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곡물을 재배하고 정제해 주유소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바이오 연료로 만들어 낸 에너지보다 훨씬 큰 상태라는 이야기다. 이를 에너지 수지 비율(Energy Profit Ratio: EPR)이라고 하는데, 바이오 에탄올의 경우 0.8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PR 1(손익분기점)을 기준으로 이보다 크면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 경우로 이득이고 이보다 작으면 손해를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은 바이오 연료 의무 혼입 비율을 최저 10% 이상으로 유지하는 중이다.
국제 유가 오르면 식료품 가격도 오른다이 결과, 국제 유가가 오르면 식료품 물가도 함께 오르는 현상이 출현한다. 왜냐하면 국제 유가가 상승할 때, 상대적으로 값이 싼 바이오 에탄올을 이전보다 더 많이 넣으려는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름값이 내려가면 바이오 디젤 등에 대한 수요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바이오 연료의 연비가 높지 않은 데다, 휘발유나 경유에 비해 엔진에 주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탓이다.
결국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국제 식량 가격이 상승하며,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곡물 가격도 떨어진다. 지난해 강력한 고온 현상이 출현했음에도 대두를 비롯한 각종 곡물 가격은 동반 하락한 것이 이런 관계를 잘 보여준다. 물론 기후 변화가 국제 곡물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바이오 연료와 관련 없는 작물, 커피콩 가격은 연일 급등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순간, 무역전쟁이나 반이민 정책이 불러올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어떻게 저유가 환경을 만들까?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입만 열면 유가 안정을 거론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저유가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첫 번째 해결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짓는 것이지만, 이 외에도 다른 해결 수단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미국산 셰일 오일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처럼, 미국의 석유 생산량을 늘려 만성적인 공급과잉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저유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엡슨모빌을 비롯한 세계적인 석유기업들의 자본 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저유가 환경 속에서 메이저 석유 기업들은 신규 탐사를 중단하는 한편, 기본에 개발된 유정의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데에만 자금을 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로 만의 생산 독려가 아닌, 석유 기업의 투자를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는 인센티브가 적기에 제공되느냐가 핵심 포인트라 생각된다.
요약하자면, 트럼프 행정부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관세율이 아니라 저유가 환경의 출현 여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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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