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한 직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출퇴근 운전이 거의 자동이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도로상황을 지켜봐야 하니 진짜로 눈을 감을 수는 없겠지만 거의 무신경 상태로 운전대를 잡고 간다.
운전만이 아니다. 나이가 60대 70대로 접어들면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로 향하고 세수하고 옷 입고 아침 먹고 … 그 과정에서 신경 쓸 일은 거의 없다. 익숙한 환경에 익숙한 활동들이니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소중한 뇌가 도무지 수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뇌를 쓰지 않고 고이 모셔두다 보면 뇌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않을 때가 오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뇌가 기능하지 않는 대표적 질병이 알츠하이머. 생의 마지막을 비참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병이다.
알츠하이머는 노인성 치매 중 가장 흔한 타입이다. 여러 증상이 있지만 기억력과 공간지각능력 상실이 대표적이다. 기억이 하나 둘 사라지다가 나중에는 가족도 못 알아보게 되고, 익숙한 환경이 낯설어지면서 늘 다니던 곳에서 길을 잃게 된다.
알츠하이머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기대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알츠하이머 발병률은 올라가고, 확실한 치료법이 없으니 수년에서 수십년 환자 돌보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다.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 관심은 어떻게 예방하고 진행을 늦추느냐는 것. 그런 맥락에서 주목받는 것이 런던의 택시기사들이다.
택시기사는 런던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면허시험이 어려워서 재수 삼수는 보통, 대부분 몇 년씩 시험 준비를 한다. 바로 ‘지식(the Knowledge)’ 이라는 시험이다. 1865년부터 시행된 이 시험은 런던 시내 수천수만의 거리들, 랜드마크들, 주소도 불분명한 꼬불꼬불한 길들, 일방통행로들 … 한마디로 런던 시내를 꿰뚫고 있어야 합격할 수 있다. 근 200년 전 마차를 위해 만들어진 길들이니 단순히 지도 보고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택시기사들은 매순간 기억력과 공간지각 능력을 총동원해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런던의 신경과학자들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기사들의 뇌는 일반인들의 뇌와 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구진은 MRI 검사로 택시기사 16명과 다른 직종 사람들의 뇌를 비교했다. 그 결과가 지난 2000년 발표된 흥미로운 내용이다. 택시기사들의 뇌 속 해마 상 융기는 일반인들과 달리 커져있다는 사실, 경력이 오랠수록 더 커져있다는 사실이었다.
해마상 융기는 뇌에서 기억작용과 운항작용을 관장하는 부위이자 알츠하이머 병 발달에 관여하는 부위이다. 그렇다면 “택시기사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낮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하버드 연구진이 최근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00개 이상 직업들을 대상으로 알츠하이머로 인한 사망률을 조사해보니 사망률이 확연히 낮은 두 직업이 있었다. 바로 택시 기사와 앰뷸런스 기사였다. 하는 일은 비슷해도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버스 기사, 비행기 조종사, 선장의 경우는 알츠하이머 사망률이 일반 다른 직업인들과 차이가 없었다.
근육을 안 쓰면 쪼그라들 듯 뇌도 안 쓰면 쪼그라든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노년에 독이 될 수 있다. 운전하면서 GPS 네비게이션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뇌는 쓸수록 좋아지는 법. 두 눈 뜨고 신경을 집중해야 할 수 있는 일, 새로운 도전을 새해결심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