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명국 교수의 ‘삶과 경영 이야기’] ‘기본 설정’ 의 숨겨진 힘

2025-01-09 (목) 12:00:00 칼스테이트 롱비치 교수 마케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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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입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들을 설치했다. 대부분의 앱은 위치 추적이나 푸시 알림이 기본적으로 활성화된 상태라 원하지 않을 경우 하나씩 설정을 변경해야 했다. 웹 브라우저의 기본 검색 엔진은 구글로 설정되어 있었기에 바꿀 필요가 없었고, 카메라의 사진이나 동영상 해상도 설정은 바꾸어 본 적이 없다.

선택지가 넘쳐나고 매 순간 결정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기본 설정(default)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우리의 취향, 의사결정, 그리고 기업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릭 존슨과 다니엘 골드스타인이 수행한 유럽 국가들의 장기 기증 동의율에 대한 연구는 기본 설정이 삶과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서조차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줬다. 연구에 따르면 opt-out 시스템(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동의로 간주)을 채택한 국가들의 동의율이 대부분 90%를 넘은 반면, opt-in 시스템(명시적으로 동의해야 장기 기증자로 등록)을 채택한 국가들의 동의율은 대부분 20%를 넘지 못했다.

기본 설정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소비자들이 기본 설정을 암묵적인 권장사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본값을 수용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해 주기 때문에 편리함을 선호하거나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의사결정에 부담을 느낄 경우 매력적인 선택이 된다. 또한, 기본 설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과도 잘 맞는다. 기업들도 소비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경쟁전략의 일환으로 기본 설정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퇴직 연금을 opt-out(자동 가입)으로 설정할 경우 opt-in(적극적 가입) 방식에 비해 참여율이 훨씬 높아지고,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 서비스 회사들은 자동 갱신을 기본 설정으로 두어 수입을 극대화한다.


2021년, 애플은 아이폰 등에서 광고 목적으로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려면 반드시 명시적인 동의를 받도록 앱의 기본 정책을 변경했다. 이전에는 사용자가 명시적으로 데이타 추적을 비활성화하지 않는 한, 앱 간 자동 추적이 가능했는데, 이제 페이스북과 같은 앱이 추적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의 관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이듬해 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폰 사용자의 62%가 정보 공유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로 인한 페이스북의 매출 하락이 100억 달러(연 매출의 약 8%) 이상이 될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주가는 26% 하락했다.

최근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의 구글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판결은 기본 설정이 독점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구글은 아이폰 사파리 브라우저의 기본 검색 엔진이 되는 대가로 2021년 한 해에만 애플에 180억 달러를 지불했다. 구글은 또한 모질라, 삼성, 버라이존 등에서도 기본 검색 엔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80억 달러를 지급했다. 구글이 지불한 총 금액은 검색 광고 수익의 약 16%에 달하는데 2024년 8월 연방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빙(Bing)의 시장 점유율이 1% 늘어나면 약 20억 달러의 광고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자사의 검색 엔진을 애플의 기본 엔진으로 설정하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본 설정이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중요한 결정에 대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경쟁을 제한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명을 구하는 장기 기증 정책에서부터 디지털 환경을 형성하는 검색 엔진에 이르기까지, 기본 설정은 인간 행동과 기업 전략을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필자 송명국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텍사스 A&M 경영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칼스테이트 롱비치에서 마케팅학과 정교수 겸 마케팅 애널리틱스 석사과정 디렉터를 맡고 있다.

<칼스테이트 롱비치 교수 마케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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