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음 대통령’

2025-01-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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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술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두주불사인 그의 음주습관은 검사시절부터 유명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여주지청장 시절 그가 일주일에 소맥 100잔을 마신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확산됐으며, 20대 시절에는 맥주를 한 번에 3만cc를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정치참여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SNS에 “주량은 소주 1~2병”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윤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소주와 맥주를 반반 조합해서 만든 ‘소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은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분초를 쪼개 써야할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도 음주와 관련한 이러저런 소문과 구설들이 나돌았다. “캠프에서 저녁 술자리를 대비해 오전 일정은 비교적 여유 있게 짠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그의 정치적 진로에 음주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대통령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그런 우려가 그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22년 5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있던 다음날 그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 아파트 근처 단골집에서 과음을 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또 일상적인 지각과 ‘가짜 출근차량 쇼’ 등 술과 관련된 윤석열의 근무태만 의혹은 임기 내내 계속됐다.

윤석열이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하거나 정책을 발표하면 그때마다 “최악의 술통령이다” “술만 마시는데 어떻게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겠나” “나랏돈으로 술 마시는 것도 문제”라는 등 누리꾼들의 날선 비판과 불만이 쏟아졌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술’로 인해 이처럼 비판받은 적은 없었다.

음주가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최악의 사례는 12·3 비상계엄 선포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이 지난 4월 총선 전후로 회식자리에서 “계엄령”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으며 이즈음 그는 술자리에서 소맥 폭탄주를 20잔씩 마시곤 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7일 정부 전직관료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정도면 최소한 알코올 의존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기간 폭음을 하는 사람들의 대뇌 피질은 전반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게 뇌 자기공명영상(MRI)에서 관찰된다. 이는 전두엽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인지기능 저하를 시사한다.

극우성향인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대통령의 반복적인 만취는 국가최고지도자인 대통령 유고상태가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려를 나타낸 적이 있다. 그는 “압도적 여소야대 정국과 정권 지지 기반의 취약성으로 인해 향후 1년 6개월 이내에 정치적 변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음주문제를 잘 관리하지 않는다면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윤석열의 폭음과 가장 대비되는 전직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청와대는 술과 담쌓은 정부였다. 노무현은 본래 애주가였지만 재임 기간 동안 술을 멀리했다. 해외 귀빈이 참석한 청와대 만찬 등에서 와인 잔에 포도주스를 따라 건배를 하곤 했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 술을 자제한 것이다.

한 수석비서관이 “술을 못하시느냐”고 묻자 노무현은 “24시간 위기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술 마시고 판단력을 잃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술과 관련해 윤석열이 노무현의 반만 따라했어도 지금의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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