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정치기자들이 정치인에게 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 같은 ‘순진한’ 질문이다. 거짓말 하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 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문제가 너무 팽배해서 …”라는 게 듀크대 빌 어데어 교수의 설명이다. 팩트체킹 웹사이트 폴리티팩트를 운영 중인 그는 정치판의 거짓말 정도가 지난 수십년 사이 너무 심각해졌다고 지적한다. 정치인 거짓말 홍수시대라고 그는 말한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어데어 교수가 정치인들의 거짓말 실태를 조사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거짓말은 계산에 의한 선택이다. 거짓인 이 말을 할 경우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지지층의 지지를 위해 ‘적당한 거짓말쯤이야’ 라는 것이 정치인의 계산법이자 이 시대의 정치문화라고 그는 지적한다.
사실 지금 미국에서 정치인의 거짓말을 문제 삼기도 어정쩡하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도널드 트럼프가 두 번째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집권 1기 때 미디어들은 그의 거짓말 통계를 냈을 정도였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가 데이터베이스로 그의 거짓말들을 추적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는 하루 평균 12번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최초의 거짓말쟁이 대통령은 아니다. 조지 워싱턴 이래 모든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 모든 거짓말이 다 같은 건 아니다. 최고지도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한 거짓말이 있고 사욕을 위한 나쁜 거짓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군사작전. 대통령이 중대한 군사작전을 솔직히 다 공개하면 작전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히틀러의 세력 확장이 유럽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미 국민들은 미국이 유럽전쟁에 개입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루스벨트는 표면적으로는 전쟁개입에 반대한다고 천명, 국민들을 안심시키면서 뒤로는 영국을 도우며 전쟁에 참여할 준비를 은밀히 진행했었다.
하지만 대통령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거짓말한 경우는 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은 그저 사욕을 위한 거짓말. 대표적인 케이스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한 빌 클린턴의 거짓말. 대통령 직을 잃지 않으려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그보다 더 유명한 케이스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는 리처드 닉슨의 거짓말.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불법침입하고 도청하는 플랜에 대해 닉슨은 사전에 알고 있었고, 승인했던 것으로 추후 확인되었다.
그렇게 거짓말 난무하는 워싱턴 정가에서 유독 구분되는 한 인물이 있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 같았던 존재, 지미 카터였다. 워터게이트 사태 후 미 국민들은 정치권의 거짓에 신물이 났다. 정직한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때 카터가 등장했다. 1976년 대선에서 그는 “나는 절대로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안 한다”는 메시지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에 더해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마음으로 간음의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 그의 신실한 모습에 유권자들은 현직의 제럴드 포드 대신 카터에게 표를 던졌다.
평생 정직으로 맑음을 추구했던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9일 국장을 앞두고 고향 플레인스를 떠나 애틀랜타 카터센터를 거쳐 워싱턴 DC로 이동하는 운구행렬이 경의와 애도 속에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카터가 존경했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정치의 슬픈 임무는 죄 많은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슬픈 임무를 다하려는 정치인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트럼프 2기에 우리는 어떤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