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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사자, 멧돼지 이야기

2024-12-17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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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로 여우와 사자의 덕을 들었다. 덫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여우의 교활함이, 늑대들을 겁주기 위해서는 사자의 용맹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자는 덫에 맥을 못추고 여우는 늑대 앞에 무력하기 때문이다.

과거 군주의 말이 곧 법이던 시절에는 사자의 덕이 더 중요했겠지만 법과 제도의 중요성이 커진 요즘에는 여우의 영리함이 훨씬 더 필요하다. 이를 무시한채 사자 흉내를 내려다 아차 하면 저돌적인 멧돼지 신세로 전락하는 수가 있다.

지난 주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이로써 윤석열은 하루 아침에 대통령 권한을 잃고 국가 원수에서 내란 수괴 피의자로 수사를 받을 위기에 놓였다. 모두 자업자득이다.


따지고 보면 윤석열의 몰락은 취임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번 대선은 불과 0.7% 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렸고 그렇게 이긴 데는 이준석과 안철수가 힘을 보태줬기 때문이라는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 두 사람을 쳐낸 일이다. 토끼 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는 삶아도 좋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으나 착각이었다. 토끼 사냥은 사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취임 첫날부터 지지 세력의 외연을 넓히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정반대로 지지자들을 끊임없이 내치는 뺄셈의 정치를 했다. 이준석과 안철수, 유승민은 잠재적 경쟁자라 그렇다 치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김기현부터 나경원,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이 키워준 한동훈마저 내쳤다.

올 총선을 앞두고 처음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민주당이 이재명 독주 체제로 가면서 여기서 이탈한 세력이 꽤 있었다. 그런 것을 채상병 의혹으로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진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하는가 하면 언론인 식칼 테러 위협을 가한 황상무를 감싸고 돌고 김건희 문제로 여당 대표인 한동훈과 각을 세우면서 판세는 완전히 돌아섰다. 그 후 190석이 넘는 거야는 수시로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예산을 깎으며 관리 탄핵을 일삼는 등 대통령을 자극했다. 이에 쌓이고 쌓인 분노가 터져 폭발한 것이 계엄 사태다.

국회 표결로 계엄이 해제된 후 거취를 여당에 맡기겠다던 윤석열을 며칠 뒤 말을 바꿔 계엄은 고도의 정치 행위로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했다. 윤석열은 이번 계엄 선포로 엄청난 두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하나는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 정적들을 잡아들이면 자신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한국 헌법은 전시 사변이나 그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서만 계엄을 발동할 수 있게 했으며 그 때도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통보를 의무화하고 국회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이를 해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계엄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막기 위한 국회 장악이나 국회의원 체포는 위헌이란 얘기다. 애초부터 계엄을 통한 합법적인 정국 장악은 불가능했다.

두번째는 가만히 앉아 계엄령만 선포하면 사령관과 군인들이 이를 따를 것이란 착각이다. 5.16 쿠데타 직후와 1972년 10월 궁중 쿠데타 당시 계엄령을 내린 박정희나 1980년 광주 유혈 진압을 앞두고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전두환은 군대 사정을 빠삭하게 아는 이들이어서 군대도 말을 들었지만 군대는 가본 일이 없고 임기라고는 2년 남짓에 지지율 10% 대의 대통령의 말을 어느 군인이 듣겠는가. 또 계엄이 성공하려면 정보 통제가 필수인데 요즘처럼 유튜브에 SNS가 난무하는 세상이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가.

윤석열은 국회를 장악하고 국회의원을 체포할 생각은 없었으며 단지 경고용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헌법 어디에도 계엄을 경고용으로 쓰라는 조문은 없다. 또 계엄군을 지휘한 사령관들로부터 국회 출입을 막고 국회의원들을 끌어내 싹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계엄이 고도의 정치 행위라 처벌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이 말이 안되는게 1980년 비상계엄 때 대학교에서 모의 재판을 열고 전두환한테 사형을 구형한 사람이 바로 윤석열 자신이다. 고도의 정치 행위를 한 전두환에게 사형은 왜 구형했는지 묻고 싶다.

이번 계엄 선포로 윤석열은 스스로에게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렸을뿐 아니라 ‘국민의 힘’을 쪼개놨으며 한국의 국제적 위신을 추락시켰고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던 이재명에게 가장 큰 연말 선물을 안겨줬다. 아직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훗날 이재명이 대통령이 돼 계엄을 선포하고 반대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도 잘 했다고 할 건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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