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또 끝자락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덧 세밑이다. 몰려드는 것은 그런데 허탈감뿐이다.
전쟁의 소식은 그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중동에서. 전쟁의 불길은 동아시아로도 번질 기미다. 온통 전쟁으로 지고 샌 한 해였기 때문인가
방탄, 방탄, 방탄…. 탄핵, 탄핵, 탄핵,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정치권에서 내내 들려온 소리다. ‘이재명을 사법리스크에서 지켜내라’- 더불어민주당의 존재 이유이자, 지상과제라도 된 양.
검사도 탄핵, 장관도 탄핵. 그리고 대통령도 결국 탄핵의 광기에 휘말렸다. 한국 발로 전해진 이 초현실적(?) 소식들. 세밑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실은 ‘끔직한 해(annus horribilis)’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가 한 말이던가. 그 ‘annus horribilis’가 연말을 맞아 또 다시 회자되고 있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세습독재체제가 무너졌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2024년은 이란에게는 ‘끔직한 해(annus horribilis)’가 되고 있다는 논평을 한 것.
이 ‘끔찍한 해’의 발단은 2023년 10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푸틴의 71세 생일인 이날을 맞아 이란은 한 선물을 준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푸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중동에서 제 2의 전선을 연 것이다.
‘저항의 축’의 일원으로 불리는 하마스를 동원, 이스라엘 가자지역에서 대규모 테러공격을 펼쳤다. 헤즈볼라의 파상적 공격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한 동안 수세에 몰렸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반격을 펼쳤다. 그리고 감행된 게 지난 4월의 다마스쿠스 이란영사관 공습으로 이슬람 혁명 수비대 쿠드스군의 핵심 지휘관들이 다수 사망했다.
끔찍한 해가 그 저주의 자락을 펼친 것인지 이후 재앙이 잇달았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사를 당했다. 이란을 방문 중이던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됐다. 가자 테러공격 주모자이자 하니예의 후계자인 야흐야 신와르가 사살됐다.
헤즈볼라는 지도자들이 제거공작으로 하나 둘 제거되면서 마침내 궤멸적 패배를 안게 됐다. 그리고 12월 들어서는 시리아의 알아사드정권이 반군세력의 공격에 열흘도 못 버티고 무너져 내렸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이란의 허약성이다.
2024년이 ‘끔찍한 해’이기는 푸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전쟁 3년째를 맞아 전투상황은 우크라이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러나 거기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랐다.
하루 평균 1500여 명, 전제적으로는 80만에 가까운 전상자를 냈다. 거기에다가 100만에 가까운 엘리트계층 신세대는 해외로 빠져 나갔다. 심각한 인력난에 경제가 주저앉을 판이다.
‘전투는 군(軍)이 하고 전쟁은 경제가 한다‘고 하던가. 경제전선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 상황과 관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서의 전략적 승리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의 급격한 붕괴도 바로 그 영향으로 이 역시 푸틴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전략의 교두보였던 시리아 기지들을 모두 잃게 됐다. 그런데다가 러시아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푸틴의 국제적 위상은 말이 아니게 됐다.
‘끔찍한 해’는 그러면 이제 그만 아듀(Adieu). 다가오는 새 해는 기쁨의 해가 될 것인가. ‘아니, 더 끔찍한 해’가 될 것 같다는 전망이다.
‘새로 들어서는 트럼프행정부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다. 이란으로서는 악몽과 같은 소식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 거론 되고 있는 게 이란 신정체제 체제붕괴 가능성이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도 있다.’ 시리아사태를 기점으로 푸틴 러시아의 운명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늪에 빠진 채 경제전선에서 허덕이는 러시아. 이에 따라 출렁이는 중앙아시아지역의 탄, 탄 국가들. 1980년대 말 소련제국 붕괴직전 상황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게 텔레그라프지의 지적이다.
강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 독재체재의 실상이다. 그 전철을 이란이, 러시아가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시리아사태와 관련해 새삼 나오고 있는 관측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2024년이 끝나는 시점의 국제 형세의 흐름은 자유 민주주의 쪽으로 크게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는 거다.
관련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방탄으로 시작해 탄핵으로 마감된 2024년이 과거 속으로 사라지면서 대한민국은 ‘끔찍한 해’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될까, 아니면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까 하는 것이다.
절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중국과 러시아로 대별되는 독재 쿼드는 자칫 붕괴 도미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게 현 국제정세로 한반도에 미치는 군사지정학적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함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여론의 물줄기도 뒤틀릴 수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상황 역전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보여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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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