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도록 도울까.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바튼 스웨임이 일전에 던진 자문에, 자답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한 구소련 반체제인사의 믿음대로라면’이라는. 그가 인용한 인사는 유리 야림-아가에프라는 헬싱키그룹에 속한 과학자다.
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유일한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민주화를 꼽는다. 그리고 이 전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전체주의 블록과 자유 민주진영과의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체주의체제를 통치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닌 이데올로기다. 그런 전체주의 체제와 영구적 평화를 보장하는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게 남게 될 옵션은 우크라이나를 도와 승리로 이끄는 것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구촌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고 있다. 러시아이고, 이란이고, 북한이 그들이다. 그 배후에는 중국이 도사리고 있다. 왜 이런 짓에 나서고 있나. 그는 체제(regime)에서 답을 찾는다.
러시아, 이란, 북한, 중국. 이 나라들은 ‘전체주의 사회주의(totalitarian socialism)’체제로 분류된다. 그 체제는 세 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다. 국제적 전체주의 사회주의가 그 하나로 공산주의로 불리는 체제다. 국가적 전체주의 사회주의는 나치즘으로 대표된다. 종교적 전체주의 사회주의는 이슬람이즘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그 존재 자체로 전체주의 세력의 체제유지에 독소가 된다.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에 대해 극도의 혐오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반미, 미국타도가 이들 체제들의 존재이유(Raison d’etre)라는 거다.
CRINKs로 통칭되는 이 나라들의 반미정서의 연원은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의 경우 반미주의는 상당 기간 동안 야릇한(?) 진화과정을 거쳐 왔다.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른다.” 1994년 임종을 앞둔 무렵 닉슨이 남긴 회한(悔恨)어린 고백이다.
‘세계 최대 인구를 포용한 중국이 공산체제라는 사실은 세계 평화에 최대 위험이 될 수 있다. 중국이 변해야만 세계는 안전하다.’ 이 같은 전제 하에 닉슨이 펼친 게 핑퐁외교이고 중국포용정책이었다. 그런데 ‘톈안먼 사태’를 통해 결코 변치 않는 ‘포식자로서 중국 공산당’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고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핑퐁외교 이후 미국의 중국과의 관계를 매트 포팅거 전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은 이런 비유로 설명했다. ‘미국은 베이비 상어를 보고 시간을 들이면 돌고래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베이비 상어를 정성껏 사육했다. 베이비는 커지고, 커지고 또 커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돌고래가 아닌 거대한 백상어가 됐다. 미국은 끔찍한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닉슨의 고백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동안 ‘평화굴기’를 내걸고 미소외교로 일관했다. 그 미소 뒤로 그러나 시퍼런 비수를 품고 있었다. ‘미 제국주의 타도’라는. 시진핑의 등장과 함께 중국 공산당은 가면을 벗어던졌다. 국내외적으로 마오쩌둥시대를 방불케 하는 억압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우한 발 코비드 19, 뒤이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중 관계는 점차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중국의 반미주의는 이와 함께 지극히 ‘중국스러운’ 변이를 겪게 된다.
반미주의를 일견 정교해 보이면서도 중증의 강박증세로 충만한(?) 모순투성이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둔갑시킨 것이다. 한(漢)지상주의랄까, 중화패권주의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를 시진핑 체제는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legitimacy)강화를 위해 14억 중국인민 세뇌에 동원하고 있다. 동시에 호전적 팽창주의 해외정책의 원칙으로도 원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베이징은 미국과의 관계 ‘엔드 게임’에 진작부터 돌입했다는 것이 트럼프 백악관의 국가안보 수석 부보좌관으로 지명된 알렉스 웡의 진단이다.
워싱턴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중국과의 관계를 놓고 ‘포용인가, 경쟁인가’ 논란을 벌이던 게 미국의 군사지정학 전문가들이었다. 그랬던 그들 사이에 하나의 컨센서스가 굳어지고 있다. 미-중 관계를 적대적 경쟁관계로 규정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끝장날 때까지 몰아붙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알렉스 웡의 지적도 그렇다. 미국 주도 자유민주주의 세계질서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며 무너뜨리려 든다. 그 중국공산당에 주저함 없이 정면으로 맞대응하겠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뭔가가 새삼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느낌이다. ‘계엄정정 이후 한국’의 모습이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종중친북세력의 숙주가 된 지 오래다. 그 거대 야당이 오직 이재명방탄을 위해 입법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서 대한민국은 마비 상황을 맞았다. 이에 비상대권 행사로 버틴 대통령, 그러자 탄핵시도…. 정치내전은 이제 전면전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 도발에 초강경 맞불을 예고하고 나선 트럼프 행정부, 더 나가 워싱턴의 군사지정학 전문가들은 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다.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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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