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폰자 버틀러(Laphonza Butler, 45)는 캘리포니아 주를 대표하는 2명의 연방 상원의원 중 한명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 최대 주인 캘리포니아의 최고위직 연방의원 이름이 가주민들에게조차 낯선 이유는 무엇일까? 436일간 세니터(senator)였다가 오는 12월13일 내려오는 라폰자 버틀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각 주마다 연방 상원의원이 공석이 될 경우 후임자는 주지사가 임명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상원의원이 6년 임기 중에 죽거나, 스스로 사퇴하거나, 직무수행이 불가능해져야하기 때문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예외적으로 그의 임기 동안 2명의 연방 상원의원을 임명했다. 한 사람은 2021년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부통령이 되면서 떠난 자리에 주 총무처장관이었던 알렉스 파디야를 임명한 것이다. 당시 해리스는 상원의원 100명중 유일한 흑인여성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또 다른 흑인이나 여성을 임명하라는 압력이 매우 컸다.
그런데 흑인도 여성도 아닌 히스패닉 남성을 앉히자 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그때 뉴섬은 만일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이 임기를 마치지 못할 경우, 그 자리에는 반드시 흑인여성을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치매설이 파다했던 파인스타인은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터여서 그 자리를 두고 3명의 후보가 치열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 연방하원의원들인 애덤 시프, 바바라 리, 케이티 포터였다.
2023년 9월29일, 파인스타인이 임기 중 향년 90세에 별세했다. 뉴섬에게 두 번째 임명의 기회가 온 것이다. 당연히 세 후보 중 흑인여성인 바바라 리를 임명하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하지만 상황은 민감했다. 이런 경우 임명된 사람이 잔여임기를 채운 후 선거에 도전하면 대개는 현직의 이점 때문에 당선되기 때문에 결국 그를 밀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난처한 입장에 놓인 뉴섬은 그때 아주 다른 선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세 후보가 아닌 제4의 인물을 임명한 것이다. 그 사람이 라폰자 버틀러였다. 이 선택은 흑인여성을 임명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며, 경선중인 3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23년 10월1일 버틀러는 그렇게 갑자기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다. 상원에 입성한 12번째 흑인이며 세 번째 흑인여성, 또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상원 최초의 유색인 의원이었다.
도대체 라폰자 버틀러는 누구인가? 그녀는 오랫동안 가주의 민주당 정치인들과 가까이 일했고 친분도 두터웠지만 한번도 공직에 나서지 않아 유권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난 그는 어머니가 하루 세 잡씩 뛰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흑인 명문대인 잭슨주립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볼티모어와 밀워키,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간호사, 청소부, 병원직원들을 위한 노동권 조직자로 일한 후 2009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노조운동을 통해 정치판의 생리에 익숙해진 그는 곧 가주 최대노조인 북미서비스노동조합(SEIU)의 회장이 되었고, 2021년 흑인여성 최초로 ‘에밀리 리스트’(Emily’s List)의 수장이 되었다. 에밀리 리스트는 여성 정치인들을 후원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로, 지난 40년 동안 1,500명이 넘는 여성을 공직자로 만든 파워풀한 단체다. 그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캠프와 2020년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의 캠프에서 수석고문으로 일했고, 2018년 제리 브라운 주지사에 의해 UC 평의원으로 임명돼 교육계에서도 막강한 인맥을 쌓았다. 한마디로 정치, 사회, 기업, 노조, 학계에서 두루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왔다.
뉴섬 주지사가 버틀러를 임명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잔여임기만을 채우고 내려올 것인지, 2024 선거에서 다음 임기에 출마할 것인가에 쏠렸다. 그가 출마를 선택하면 선거전은 4파전이 돼버리고, 현직인 그가 승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일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버틀러는 처음에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며 혼란한 심정을 보였으나 취임 16일 만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현재 주어진 일, 파인스타인의 유산을 지키면서 가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놀라웠고 신선한 소식이었다. 물론 그가 출마한다면 정치신인으로서 어려움도 있을 테고, 단기간에 캠페인 자금을 모금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려고만 했다면 그동안 쌓은 인맥과 저변에 힘입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전한다.
그는 성명에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출마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내려놓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올바른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선거에서 애덤 시프가 당선되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념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는 정치판에서 보여준 라폰자 버틀러의 용기에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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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