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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전쟁에 지친 미국, 다시 ‘스트롱맨’ 택했다

2024-11-07 (목) 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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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게인 트럼프’ 배경은

▶ 인플레·불법이민 집요 공략
▶흑인·라틴계 남성 돌아서
▶2번의 암살시도 지지층 결집
▶‘전쟁 끝낼 강한 리더’ 주효

인플레·전쟁에 지친 미국, 다시 ‘스트롱맨’ 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6일 새벽 플로리다주에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 J.D. 밴스 부통령 당선자와 함께 승리 선언을 한 뒤 주먹을 불끈 쥐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에 이어 또 다시 승리한 것은 팍팍한 경제 현실과 불법이민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오랜 불만이 누적된 결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깜짝 등판하며 한 차례 돌풍이 불기는 했으나 이미 트럼프에게 기운 선거의 큰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에 미국의 천문학적 지원이 이뤄지는 가운데 글로벌 갈등을 종식시킬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도 이번 선거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결국은 경제

선거 전문가들은 ‘어게인 트럼프’의 원인으로 결국 경제와 이민 문제를 1순위로 꼽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 기간이 바이든의 임기와 공교롭게 겹치면서 바이든 정부의 명백한 실정으로 프레임화됐다는 분석이다. 바이든은 낮은 실업률과 주가 상승, 경제 성장률, 제조업 부활 등을 성과로 내세웠으나 “4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냐” “베이컨이 왜 이렇게 비싸냐” 등의 ‘트럼프식 수사’가 유권자들에게 먹혔다는 것이다.


이날 투표소에서 만난 유권자들 역시 하나같이 경제 문제를 트럼프에게 투표한 이유로 지목했다. 라틴계인 마르코스 씨는 “한때 민주 당원이었던 나도 지난 4년간의 가격 상승에는 정말 질릴 대로 질리고 말았다”면서 “이제는 좋은 경제로 ‘페이지를 넘길 때(해리스 시대를 열자는 민주당의 선거 구호)’”라고 말했다.

송원석 한인유권자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선거 결과는 트럼프의 약점과 각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해리스보다는 더 나은 경제 상황을 만들 것이라는 희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서 “결론적으로 해리스가 바이든 정부와 차별화하고 경제 측면에서 명확한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민주 텃밭 공략

인플레이션과 불법 이민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흑인과 히스패닉 남성들, 이른바 민주당의 ‘집토끼’에게 트럼프가 다가간 것도 이번 대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상당수가 블루칼라 노동자들인 이들은 미국 내에서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을 가장 심하게 겪은 계층으로 꼽힌다. 높은 물가와 함께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불법 이민자들이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트럼프의 메시지가 파고들면서 표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의 10월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흑인 유권자는 15%, 히스패닉계는 37%로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번 대선에서 노스캐롤라이나·네바다 등의 투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NYT는 당시 유색인종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종 프레임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는 반면 경제 문제와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젊은 흑인·히스패닉 남성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는데 이들은 트럼프의 막말과 기행에도 무감각하다고 짚었다.

■피격 극복 ‘불사조’

두 번의 암살 시도를 겪고 이를 통해 지지층 결집을 이룬 것도 승리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트럼프가 7월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유세에서 피격 당해 오른쪽 귀에 피를 흘리면서도 “싸우자”를 외친 것은 지지층을 더 단단히 결속시키는 계기가 됐다. 온갖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춘 것은 트럼프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며 한 차례 실패한 재선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2021년 1·6 의사당 폭동 여파와 수많은 사법 리스크 속에서도 트럼프 지지율은 4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비교해 자신을 ‘강한 대통령’으로 포지셔닝한 것도 불안한 글로벌 정세 속에서 미국인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유세에서 자신의 임기 동안 큰 전쟁이 없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으며 자신이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바로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혀왔다. 영국 BBC방송은 앞서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대다수 유권자에게 해리스보다 강력한 리더라는 이미지가 구축됐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소수계 우대 정책, 동성애 인정 등 진보적으로 흐르는 미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보수 및 중도층의 반감이 커지는 가운데 해리스의 진보적 측면을 부각시킨 것도 이번 대선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해리스에 대해 평균적인 미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리버럴’ ‘급진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공세를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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