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서 고아들에 헌신하던 미주 한인의 ‘비극’
2024-11-05 (화)
황의경 기자
▶ 현지 봉사활동 떠났다가 강도 폭행에 ‘식물인간’
▶ 2년만에 결국 하늘나라로
▶가족 “한인들 도움 절실”
정성범씨와 에밀리 부부가 페루 아이들과 함께 한 모습. [가족 제공]
지난 2020년 페루로 봉사 활동을 떠났다가 현지 강도에게 습격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던 LA 출신 한인 정성범씨가 지난달 끝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씨의 가족과 친구들은 제대로 된 수사를 이어가지 않는 페루 당국의 부당함을 고발하며 한인사회의 도움을 절실하게 호소했다.
전염병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던 지난 2020년 12월 정성범씨는 부족함 없는 미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페루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처음 계획은 2주 동안의 단기선교였다. 부부가 다니던 교회를 통해 아내 에밀리와 페루로 간 정씨는 2주 동안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 정씨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 것 같았다. 정씨 부부는 조금 더 페루에 남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페루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지만 쉽지 않았다. 잘 곳도 없었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사비를 털어 고아원 건물 곳곳을 수리하고,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태권도를 알려주고 영어도 가르쳤다. 2021년 초 정씨 부부는 코로나19에 감염돼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부인 에밀리는 “당시 성범씨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회복 후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었다”며 “그렇지만 성범씨는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버지니아에서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부부는 사업도 뒤로한 채 아이들에게 헌신을 다했다.
2022년 1월 여느 때와 같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동하던 정씨를 누군가 차량으로 따라와 고의로 들이받고 폭행하면서 부부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중상을 입은 정씨는 집중 치료가 시급했지만 팬데믹이 뒤덮은 페루의 의료 시스템은 이미 무너진 상황이었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정씨를 위해 에밀리는 부부가 미국에서 운영하던 사업체도 정리하고 고군분투했지만, 지난달 정씨는 결국 영원한 길을 떠났다.
가족에 따르면 정씨를 폭행한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에밀리는 “아무런 죄도 없는 성범씨가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음에도, 페루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와 미온적인 대응에만 일관하고 있다”며 “페루 정부를 끝까지 압박해 범인이 처벌받고 정의가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성범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한인 커뮤니티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절실히 요청했다. 고펀드미 닷컴 https://gofund.me/ae6df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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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