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태이슈, 대선 변수 될까?

2024-09-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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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압승이 예견됐었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았던 데다 중간선거는 대체적으로 집권당을 심판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가 나왔다.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이 됐지만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 자리를 지켜낸 것이다. 출구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판례인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면서 촉발된 낙태이슈가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낙태권을 중요한 문제로 꼽은 유권자들 가운데 절대 다수인 76%가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결정에 대해 진보적인 주들뿐 아니라 보수적인 주들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아주 강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확인시켜준 것은 연방대법원 판결과 중간선거 사이에 캔자스에서 실시된 낙태권 관련 주민투표였다. 캔자스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기 위해 주 헌법의 낙태권 보장 조항 삭제를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캔자스는 미국에서 보수성향이 가장 강한 주로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56%를 득표했던 곳. 당연히 조항삭제 찬성이 압도적일 것으로 전망됐으나 결과는 찬성 41%, 반대 59%로 헌법수정은 부결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낙태이슈의 파급력을 간파한 민주당은 이것으로 ‘선거 프레임’을 만들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이것으로 중간선거에서 큰 재미를 봤다. 중간선거에 대해 ‘문화이슈’가 정책과 경제를 이긴 선거라는 평가가 나왔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선거에서는 종종 지지하는 정당보다 문화이슈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곤 한다. 그래서 선거를 흔히들 ‘문화전쟁’이라 부르는 것이며, 바로 지난 중간선거가 그랬다.

그동안 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해온 것은 대체적으로 보수였다. 그러니 지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지킨 것은 진보가 문화전쟁에서 모처럼 거둔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오는 11월 대선에서도 낙태이슈를 중요한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정치 리서치 기업인 ‘애드임팩트’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은 11월 선거의 포커스를 기존의 트럼프 비판에서 경제와 낙태이슈로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가 바이든의 대체 후보로 확정된 후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민주당으로서 고무적인 것은 대통령 선거일에 여러 주에서 낙태권 관련 주민투표가 함께 실시된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는 경합주로 분류되는 애리조나와 네바다 등이 포함돼 있다. 낙태이슈는 진보·여성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이슈인 만큼 민주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자 트럼프는 여성과 중도층 표를 의식한 듯 수시로 입장을 바꾸면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낙태 반대를 표방해왔던 그는 최근 들어서는 ‘유동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보수층 지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10일 밤 열린 대선 TV토론에서도 “나는 낙태금지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제는 각 주가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내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확고한 철학이나 가치 위에서 정치를 하는 인물이 아닌 만큼 그가 지금 어떤 말을 하던 당선 후에는 기존 입장으로 되돌아가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낙태이슈는 올 대선에서도 파급력을 발휘하게 될 것인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전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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