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독일에서 온 친한 언니가 뉴욕을 방문했는데 밴더빌트 전망대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독일 사람들은 이곳이 가보고 싶은 곳 탑5 안에 든다는 것이다. 뉴욕에 오래 살면서도 언제 이곳이 개장됐는가 싶을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는데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
2020년 9월에 완공되었으나 1년뒤 2021년 10월21일 문을 연 ‘원 밴더빌트 써밋(One Vanderbuilt Summit)’ 전망대는 42가 그랜드 센트럴역 가까이, 93층 최신식 고층빌딩의 꼭대기 3개층으로 되어있다. 입구에서부터 신분증 검사, 사진촬영 등 철저한 검색을 거치면 신발 위에 신는 덧신과 선글래스를 준다. 천지사방이 번쩍거리는 엘리베이트를 타면 순식간에 전망대에 다다른다.
사방이 확 트인 유리창 밖으로 크라이슬러 빌딩의 화려한 첨탑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보이고 이스트 리버 너머 퀸즈지역도 보인다. 남쪽방향으로 가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멀리 원 월드무역센터, 콩알처럼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한바퀴 돌아 북쪽으로 가면 센트럴 팍 녹지대와 억만장자 콘도빌딩(일명 펜슬빌딩)이 뽀족하게 하늘을 찌를 듯하다.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을 올라가 두 개층의 통유리를 통해 보는 맨하탄 풍광이 근사하다. 일찌기 세상에 이런 곳은 없었다. 그래서 뉴욕의 핫플레이스인 것이다. 처음엔 번쩍번쩍하는 것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가 점점 자신이 아는 지역을 찾아서 보게 되고 셀폰으로 인생 기념사진 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밝고 환한 햇볕이 반사되어 눈을 찌르니 선글래스를 안낄 수가 없고 1,000피트 아래 도로를 지나는 택시나 트럭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바닥도 거울이다 보니 공지사항에 미니스커트는 입지 말고 바지, 반바지, 타이즈 등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고 되어있다. 높은 천장과 천지사방이 거울로 된 초현실적인 세계에 대중을 초대한 거대한 작품을 만든 써밋 전망대, 역시 최강대국 미국스럽다.
수십년 전 뉴욕에 처음 도착하자 그 다음날로 친지가 데려간 곳이 5번가와 34가에 위치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86층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서 이곳은 퀸즈, 저곳은 로우 맨해튼 하는데 뭐가 뭐진 하나도 모르겠고 그저 참으로 빌딩숲이 깊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넓고 높은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제대로 풍광을 보지도 못했다. 그 이후 뉴욕을 방문하는 일가친척들, 지인들과 십여 차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올랐을 것이다.
뉴욕에 왔을 때, 퀸즈보로 플라자 전철역 근처에는 고층빌딩이 시티뱅크 하나뿐이었다. 지금은 고층빌딩 숲을 이루었다. 뉴욕에는 최신식 고층빌딩이 많고 지금도 부지런히 새빌딩이 올라가다 보니 이곳에 사는 우리는 별로 경이롭지 않다.
그러나 독일의 붉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수십 년을 산 유럽인들은 높고 화려하고 멋진 고층빌딩에 올라가 보는 것이 하나의 꿈일 수 있겠다 싶었다. 피렌체의 두오모에 올라가 내려다본 붉은 지붕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들려주는 베로나의 붉은 지붕, 붉기도 하고 오렌지색이 나는 풍광은 화려하거나 최신식과는 거리가 멀다.
유럽 올드타운의 특색인 붉은 지붕은 흙으로 기와를 구우면 이런 색이 난다고 한다. 흙의 성분에 따라 붉은색이 짙거나 연한 색의 차이가 난다는데 붉은 지붕에서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 유지하는 정신을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고유의 문화와 특색이 있다.
오래전 올드타이머 한 분이 “롱아일랜드에서 맨해튼 가게까지 롱아일랜드 익스프레스를 20년 이상 타고다니면서 봄이면 개나리가 활짝 피는 곳을 알지 못했다. 최근에야 개나리 동산을 발견했다”던 말이 기억난다.
사람들은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좌우도 보면서 살아야하나보다. 나지막한 지붕, 오래된 건물을 존중하는 유럽 거주민들이 미국의 신문명 시대를 체감하는 눈부신 고층빌딩을 보고 싶듯이, 미국에 사는 우리는 또 낮은 듯 포복한 지붕들, 붉은색에서 붉은 꽃다발같은 아름다움을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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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